3월 10일 자 「물속의 달그림자를 읊은 뜻」 칼럼

고운기 ERICA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3월 10일 자 <한국일보>에 ‘물속의 달그림자를 읊은 뜻’을 기고했다.

고 교수는 일본 최고재판소 1935년 일본 제국인견 주가조작 사건을 맡은 이시다 가즈토 판사의 이야기를 글에 담았다. 그는 “이사다 가즈토 판사는 본 사견 판결문 작성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며 “겉으로는 한 회사의 주식을 둘러싼 독직과 배임 사건이지만, 속으로는 배후에 있는 우익 세력이 일으킨 정치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6명의 피고인 가운데 장관과 고위 관리만 절반가량 포함돼 있었고, 우익의 사주를 받아 검찰을 210일 동안 강압적 수사를 펼쳤다”고 말했다. 덧붙여 “당시 수상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 우익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룬 상태였다”며 “내친김에 재판까지 이기고자 했지만, 어떤 범죄의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 교수는 당시 이시다 가즈토 판사의 심경을 담았다. 그는 “이사다는 무죄를 직감했지만, 당시 군국주의의 총칼이 공정판 재판을 그냥 놔둘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재판부는 고심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고 교수는 “이제 군국주의 세력은 총칼로 시비 걸지 못할 판결문이 필요했고, 그 임무가 이시다에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때 법조계에서 유명한 ‘마치 물속의 달그림자를 움켜잡아 올리려 하는 것과 같다’는 명문이 탄생했다. 고 교수는 “물속의 달그림자란 허구의 사건이라는 뜻”이라며 “일본 법조계에서 총칼 앞에 의연했던 사법의 명문이 그렇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사실 이 대목은 불가(佛家)에서 쓰이는 공(空)과 색(色)의 변증법에 그 연원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송나라 초 고승 조심(祖心)이 그의 스승 혜남(慧南)의 영전에 쓴 조시의 구절인 ‘뿔 셋 달린 기릭이 바다로 들어가고’, ‘휑한 하늘의 조각달만 물결 따라 일렁이네’라는 구절이 있다”며 “기린은 자신의 스승을 가리키고, 오로지 세상에 한분 밖에 없었는데, 그런 스승은 세상을 떠난 뒤 물결에 비춘 달빛처럼 남았을 따름이다”라는 뜻이라 풀었다. 덧붙여 고 교수는 “이는 있으나 없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해당 문장의 기원을 설명했다. 그는 “혜남은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시조이고 조심은 그 밑에 심인(心印)을 얻었다”며 “조심의 ‘물결에 따라 일렁이는 조각달’은 화두처럼 신도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고, 이시다의 귀에도 남아 ‘물속의 달그림자를 움켜잡는’ 이미지로 변주되어 나왔으리라 짐작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고 교수는 “그 문장에는 군국주의자의 흑심을 제압하는 굳센 마음에 벼려 있었다”며 “그로부터 32년 뒤, 1969년 이시다는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편집자 주를 통해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며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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