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음악토토사이트 테이블 꿰어진 구슬 같은 이야기
김애란 작가 특강, ‘소설의 음계(音階) 삶의 사계(四季)’

작고 사소한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바라보고자 한 작가가 있다. <달려라 아비>에서 시작해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 <이 중 하나는 거짓말> 등으로 우리 시대의 정서를 세심하게 어루만져 온 김애란 작가. 문학은 어떻게 상처를 품고, 우리 모두의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듯, 김애란 작가가 지난 5일 한양대를 찾았다.

 

▲ 김애란 작가는 특강 '소설의 음계, 삶의 사계'에서 계절과 음악이라는 핵심어로 강연을 진행했다. ⓒ 신문정 기자

| ‘인간은 참 이상해, 그렇지?’

김 씨는 계절을 만드는 해와 달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아래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며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김 씨의 이야기는 5년 전의 금환일식에서 시작한다. 달이 해를 가리는 의식이 수십 년 만에 일어난다는 소식토토사이트 테이블 당시 많은 사람이 들떠 있었다. 과학 방송에서 생중계했고 실시간토토사이트 테이블 댓글이 달렸다. 김 씨는 사람들이 올리는 무수한 댓글을 읽었다.

달을 향한 온갖 기도 문구, 그리고 그들이 하늘을 보는 동안 지갑을 훔치기도 하는 누군가. 김 씨는 "해와 달의 나이만큼이나 유구한 인간성의 한 단면"을 엿보며 "인간이란 참 이상하고 다채로운 존재임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러한 감상은 그녀의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통해 던진 질문과도 맞닿았다.

 

|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교사인 남편을 잃는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던 중 동시대 사람들의 무례함과 무지에 염증을 느끼며 인간이 아닌 시리(Siri)와 대화를 나눈다.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하는 주인공의 물음에 시리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 답한다.

김 씨는 해당 대목을 인용하며 인간을 향한 본인의 궁금증을 꺼내 보였다. 그는 "인간이라는 말은 참 알쏭달쏭해지는 단어다"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나눴다. "인간의 삶은 대체로 뻔하고 진부하지만, 그 뻔한 일상이 박탈당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는 김 씨의 말과 함께 강연은 첫 번째 계절로 향했다.

 

​▲ 김애란 작가는 이 날 강연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뻔하며, 동시에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이야기했다. ⓒ 신문정 기자
​▲ 김 씨는 이 날 강연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뻔하며, 동시에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이야기했다. ⓒ 신문정 기자

 

| 그렇게 평범한 삶과 풍경이 기적이고 곧 사건임을 알았다

한 부부는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나름대로 당시 유행하는 인테리어도 시도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차량 사고로 아이를 잃는다. 소설의 제목은 <입동>, 부부는 그 후 겨울과도 같은 나날을 지낸다. 시린 계절 속에서 되짚어본, 아이를 잃기 전 누렸던 일상은 김 씨가 말한 대로 뻔하며 평범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 김애란 작가의 '입동'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 게티이미지
​▲  김 씨의 '입동'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 게티이미지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등받이 없는 벤치형 의자에, 영우는 유아용 접이식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김애란, <입동> 중에서)

김 씨는 "비록 제목은 입동이지만, 이 장면이 내게는 인생의 환한 봄날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시린 겨울과 그 속의 봄을 지나, 다음 계절인 여름의 한 장면으로 향했다.

 

| 이름 붙이고, 그것을 나누는 일

김 씨의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철학과 청춘남녀는 늦은 밤 과방에서 풋내나는 메신저를 주고받는다. 간지럽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한 대화가 오간다.

 

​▲ 김 씨는 '너의 여름은 어떠니' 속 남녀가 앞선 '입동'의 부부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이 둘의 이야기를 그 부부의 풋풋한 젊은 시절처럼 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게티이미지
​▲ 김 씨는 '너의 여름은 어떠니' 속 남녀가 앞선 '입동'의 부부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이 둘의 이야기를 그 부부의 풋풋한 젊은 시절처럼 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게티이미지

'신기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을 제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 생각나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 버리는 것 같아요.'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중에서)

김 씨는 "이름을 알려준 사람, 우리에게도 그런 존재들이 있다"고 말했다. 호기심 많던 어린 날의 우리에게 차근차근 답을 알려주던 부모님, 어떤 여름날 만났던 첫사랑, 혹은 선배이거나 연인이거나 친구였던 누군가. 우리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와 나눠왔으며, 그 기억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김 씨는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저 '시간' 혹은 '인생'으로 뭉뚱그려 부를 수 있을 것들을 굳이 이십사절기로 자르고 입춘, 동지 등 세세하게 이름 붙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조상들은 그런 식으로 시간과 화해하고 죽음 혹은 무의미를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며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과 화해하고자 했던 <입동> 속 부부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 김애란 작가의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2014년을 전후로 해서 쓰였다. ⓒ 신문정 기자
​▲ 김 씨의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2014년을 전후로 해서 쓰였다. ⓒ 신문정 기자

아직 아이의 흔적이 남은 벽지에 복분자액이 튀고, 부부는 그것을 갈기로 한다. 이제는 합의금토토사이트 테이블 빚도 갚자며 마음을 다잡지만, 그들은 한글을 채 익히지 못한 아이가 벽에 남겨둔 다 쓰지 못한 이름의 낙서를 보고 끝내 주저앉는다.

김 씨는 아이를 잃은 부부 이야기 <입동>과 교사인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2014년을 전후해 쓰인 소설임을 밝혔다. 김 씨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여전히 상중이다"며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지용이의 누나가 죽은 선생님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줬다. 

'이런 말은 좀 이상하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요.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평생 궁금해하며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 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김애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에서)

 

| 왜 때때로 어떤 인간은,

​▲ 김애란 작가는 이 날 강연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두려운 순간에도 바른 선택을 할까'하는 본인의 궁금증을 나눴다. ⓒ 신문정 기자
​▲ 김 씨는 이 날 강연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두려운 순간에도 바른 선택을 할까'하는 본인의 궁금증을 나눴다. ⓒ 신문정 기자

김 씨는 "이 글을 쓸 무렵, '인간은 참 이상해'라는 말이 보다 많은 진실을 담은 것처럼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인간은 전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용기를 낼 때도 있지만 더 자주 나약하고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두려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신이 지키고 싶은 뜻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그녀는 "이 사실이 늘 놀랍고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 '모르겠다'는 마음은 마치 음악처럼 변주되고 반복되며 오래도록 김 씨의 마음을 맴돌았다.

 

| 마치 고유한 음계처럼

무언가를 상실하고, 그럼에도 나아가고, 서로를 위로해 온 움직임은 근현대 한국 문화와 문학 안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그렇게 한국 근현대 문학이라는 우리의 공동 자산이 만들어졌다. 김 씨는 문학을 읽으며 배운 바를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게 됐다고 고백했다.

"인간은 대체로 빤하고 진부하지만 가만 보면 참 다채롭게 제가끔 빤하다는걸, 우리 삶과 노동이 사랑과 일상이 얼마나 놀라운 구체성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고유한 음계와도 같지 않을까. 김 씨가 그녀의 소설 <도도한 생활>에서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번째 음이니까, 첫번째 손가락으로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 (김애란, '도도한 생활'의 첫 부분) ⓒ 게티이미지
​▲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번째 음이니까, 첫번째 손가락토토사이트 테이블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 (김애란, '도도한 생활'의 첫 부분) ⓒ 게티이미지

'이 방에서, 이 거리에서, 이 시장과 저 공장에서, 이 골목과 저 복도에서, 그늘에서, 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도-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 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김애란, <도도한 생활>중에서)

그러나 많은 노래와 이야기, 의미와 위로에도 불구하고 삶은 언제나 교훈과 깨달음토토사이트 테이블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삶의 허무함 속에서 회의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 상실 속에서, 문학은

병든 어머니를 돌보다 경력이 단절되고, 끝내 어머니를 떠나보낸 여성과 아버지를 잃은 남성 튜터.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속 저마다의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은 '삶은 큰 교훈 없는 상실의 연속'임을 실감한다.

강연은 다시 처음의 일식 이야기로 돌아간다. 5년 전 해와 달이 포개어지던 날, 세간에는 여느 때처럼 지구종말론이 유행했다. 그날 김 씨는 호기심에 검색하다가 미국 네브래스카 사막에 있는 고급 벙커에 대해 알게 됐다. 벙커에는 도서관, 의료실, 부엌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기도실'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 김 씨는 이 날 강연에서 문학이 어떻게 상처를 품고, 우리 모두의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 들려 줬다.  ⓒ 게티이미지
▲ 김 씨는 이 날 강연에서 문학이 어떻게 상처를 품고, 우리 모두의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 들려 줬다.  ⓒ 게티이미지

김 씨는 "최대한 경제적으로 설계해야 할 이 공간에 일부러 기도실을 만들어 놓은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때로는 식량이나 약품만큼이나 결정적인 순간 사람을 살린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며 문학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학은 행정이나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렇지만 우리 삶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들을 당장은 구원의 형태가 아닌 식으로, 구원인지도 모르게 천천히 오랫동안 보듬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는다"고 말했다.

 

| "더불어 살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김 씨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생은 판에 박힌 되풀이와 놀라움의 이중 구조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는 악보나 음악, 문학의 구조와도 비슷하며,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균질하지 않고, 인간성 역시 그렇다. 어떤 인간성은 귀엽고 사랑할 만하지만, 어떤 것은 지긋지긋하고 때로는 끔찍하기도 하다. 그 이상함과 불안정함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동화하며 살아간다. 김 씨는 "그러한 인간들과 더불어 살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지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한양대 인문관 303호에서 6월 5일, 김애란 작가의 특강이 진행됐다. ⓒ 신문정 기자

강연이 끝난 후 강진하(국어국문학과 2) 씨는 "평소와 다름없던 강의 시간에 김애란 작가님을 뵙고 인생을 숙고할 수 있어 뜻깊었다"며 자신의 일상을 중히 여기고 새롭게 바라보겠다고 말했다. 신승민(국어국문학과 2) 씨는 "내 인생은 지금 어떤 사계를 지나 무슨 음계를 누르고 있을지, 급변하는 시대와 그 속의 인생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고 대답해 보게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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