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자 「지연과 지체의 속도」 기사
박기수 ERICA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6월 2일 자 <UNN>에 칼럼 ‘지연과 지체의 속도’를 기고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시종일관 서로 다른 공간과 언어 그리고 조금씩 늦거나 어긋나는 시간을 담담히 그려낸다. 영화를 본 주변의 반응은 극단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데 어떤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평가가 옳은 것이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콘텐츠의 향유 방식은 문제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취향에 최적화된 알고리즘, 콘텐츠에 대한 분명한 기대를 보장해 주는 장르화 현상,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향유자의 선택에 따라 조절 가능한 향유 속도의 변화는 갈등을 연성화한다.
그는 “이미 익숙한 구도와 예측 가능한 결말로 경사되며, 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아니라 내용 파악 중심의 향유를 일반화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만 봐도 그 많은 장르 중에서 특정 장르만 본다거나, 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괄호 속에 묶고 스토리만 읽는다거나, 텍스트의 호흡이나 리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향유는 참혹하다.
자극적인 장르물이나 스토리 중심으로 보면 <패스트 라이브즈>가 밍밍하거나 소박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발화를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명시적으로 드러난다기보다는 대사와 대사, 표정과 표정, 풍경과 풍경 사이의 맥락에서 읽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이것이 “‘패스트 무비(fast movie)’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는 이곳에서, 시간의 지연과 지체 그리고 그 사이를 읽어야 읽을 수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소중한 이유다”라며 “대부분 작품의 밀도는 스토리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향유자의 생각의 밀도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