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교수(국문대 한국언어문학)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를
우리나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대가 토토사이트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작가들의 대가 토토사이트 문제도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동안 작가들의 대가 토토사이트 논란은 여러차례 제기됐지만 당사자들의 부인과 침묵 속에 잊혀져왔다.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우리 문단의 대가 토토사이트 문제에 대해 이재복 교수(국문대 한국언어문학)가 과감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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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우리 문학의 현 주소
이번 표절 논란은 소설가 이응준 씨가 한 인터넷 매체에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주장하는 글을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허핑턴포스트 해당 기사 읽기) 이 씨는 신경숙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과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쓴 ‘우국’의 문장을 비교하며 신 씨의 작품이 명백한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어 원문에는 없는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번역가의 독특한 표현이 ‘우국’과 ‘전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표절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였다. 의혹이 제기되자 당사자인 신 씨는 “자신은 ‘우국’을 읽은 적이 없으며 진실과 상관없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작품의 출판사인 창비도 “일부 구절의 유사함을 근거로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작가를 옹호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신 씨와 창비는 표절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럼에도 진정성이 결여된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문단의 표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국’의 표절은 이미 15년전에 다른 평론가에 의해 지적된 적이 있고, 가장 유명한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신 씨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이번에 신 씨의 표절을 주장한 소설가 이응준씨도 자신의 글에서 ‘원래 신경숙은 표절시비가 잦은 작가’라고 언급했다. 신 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 문단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문제를 유야무야 없던 일로 넘겨버렸다. 이러한 문단의 관행에 대해 이재복 교수는 “그 동안 표절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은 출판사들이 영향력을 행사해 문제를 덮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작가에게만 표절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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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 비평도 사라진 문학
이번 표절 논란에서는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와 같은 대형 출판사들이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른바 ‘문학권력’으로 군림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리고 이 ‘문학권력’이 지금껏 표절을 방관해 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은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문예지를 통해 작가들의 글을 게재해 등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문학상 제도를 운영하며 작가들을 육성해왔다. 출판사들의 영향력 아래서 성장한 작가들이 다시 문예지의 편집위원과 문학상 수상위원이 돼 다시 출판사들의 편에 서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또한 출판사들이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서 문단의 누구도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표절과 같은 문제를 알고도 방치하는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됐다.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출판사에 종속되다보니 비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그 결과 우리 문학이 도태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대형 출판사들이 우리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점도 있지만, 그 역기능도 굉장히 많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되는 문확권력과 같은 현상 이면에 있는 표절 행위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표절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본질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 “문학의 목표는 세계에 은폐되어있는 진실을 드러내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절을 한다는 것은 문학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지향점에 반대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은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는 문학을 너무 미시적으로만 바라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보다 폭넓게 고민하지 못했어요. 만약 작가들이 글을 쓰는 목적이 명확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정신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번 표절 사태와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학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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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음악, 방송, 게임에 이르기까지 표절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채 사그러들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인기 웹툰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누리꾼들은 예전부터 박미숙 작가의 웹툰 ‘내 남자친구’가 중국 작가가 그린 만화의 그림체나 연출, 구도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처음에는 신중하던 여론도 표절 의혹이 있는 장면들이 추가로 밝혀지자 점차 표절을 확신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작가는 사과문을 통해 해당 작가의 작품을 참고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연재를 중단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표절 문제에 대해 이 교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비단 작가들, 만화가들 뿐만 아니라 총리나 국회의원들도 표절을 하고,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표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표절이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타인의 아이디어에 대해 존중하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 교육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절 문제를 통해서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는 그 동안 본질적인 것에 대해 사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문학뿐만 아니라 대학교 입시 논술에서도 기교와 형식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게 되었고요. 삶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위대한 문학이나 음악, 예술은 절대 탄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표절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나라,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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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초심으로 돌아가자
우리 문학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단 한 권의 책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며 외면받고 있다. 이 와중에 터진 신경숙 작가의 대가 토토사이트 논란은 그나마 남아있던 독자들에게도 커다른 실망감과 상처를 안겨줬다. 독자 없는 문학은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창작도, 비평도 사라진 우리 문학이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 독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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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