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 속 '하대리' 전석호 토토사이트 운영자 검거(연영.03)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연극,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길"
"야, 안영이!" 직장 사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이름을 부르면 어떤 기분일까. 배우의 호통에 시청자 마저 움찔한다. 이 호통 소리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린 드라마 '미생' 속 여자 부하직원 '안영이'를 끝도 없이 혼내는 '하 대리'의 목소리다. 극 중 하 대리는 여직원에 대한 편견으로 안영이에게 과하게 화를 내며 '비(非)호감' 이미지로 자리잡았던 캐릭터다. 그러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안영이에게 동료로서의 정을 내준다. 화를 내면서도 그녀를 챙겨주는 하 대리의 모습에, 시청자들 역시 하 대리에게 마음을 내주기 시작했다. 철저한 악인(惡人)도, 철저한 선인(善人)도 아닌 우리 주변의 사람 하 대리를 연기한 전석호 동문(연영.03)을 만나봤다.
연극, 연극, 오로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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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쇼생크 탈출'을 본 고등학생 전석호 동문(연영.03)은 생각했다. 영화 감독이 돼야겠다고.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 전 동문은 결심했다. 배우의 마음을 알아야 좋은 감독이 될 테니, 먼저 배우가 돼보자고. 주변의 제동 없이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전 동문은 대학에 입학한 후 한층 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았다. "연극만 했어요. 정말 죽도록 했어요. 은사이신 최형인 교수님(예술체육대·연영)에게 모든 걸 뺏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배웠어요. 학비 400만원이 비싸다는 생각을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뒤로 학비가 한 푼도 아깝지 않을 만큼, 학교 극장에서 살면서 쓸 수 있는 장비, 무대도 다 쓰면서 연극만 하며 지냈어요." 무용이나 노래처럼 연기와 관련된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동문들도 있었지만 전 동문은 오로지 한 길, 연기만을 고집했다. 한 번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연극을 하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제가 쉴 틈이 어디 있냐고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어요. 너 그러다가 부러진다고."
그렇지만 그는 쉽사리 부러지지 않았다. 몸을 혹사시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연극을 준비할 때 일주일 가까이 밤을 샌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와서 오후까지 수업을 듣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연습을 합니다. 잠깐 쉬고 4시까지 무대작업을 해요. 5시 반 첫차를 타고 집에 갔다가 다시 아침 8시에 학교로 돌아와서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당시 무대감독이었던 후배가 제가 계속 일하는 걸 보고 정말 짜증났다고 하더라고요. 쉬고 싶은데 눈치 보이고, 자기가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선배인 제가 졸지도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고등학생 때 꿨던 감독의 꿈은 유효한 것일까. 전 동문은 손사래를 쳤다. "연기만 하기에도 벅차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미생(未生)
전 동문은 '서른 살까지는 대학로에만 붙어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연극이 좋았다. 살면서 제대로 시청한 드라마라곤 군대에 있을 때 본 '불멸의 이순신'뿐이었다. 그런 전 동문이 드라마의 길로 발을 들이게 한 것은 드라마 '미생'의 감독 김원석 씨였다. "미생의 첫 촬영이 시작하는 날과 제가 준비한 공연의 첫 무대 날이 같았어요. 그래서 캐스팅을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연극이 다 끝나고 촬영이 이미 시작된 후에도 합류할 수 있도록 배려 해주셨습니다. 촬영할 때도, 짧게 끊어서 촬영하는 보통 드라마와 달리 연극을 할 때처럼 오래 찍는 방법으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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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스텝들의 노력 속에서 탄생한 미생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중 전 동문이 연기한 '하 대리'는 극 초반, 부하직원 '안영이'에게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 절반 이상이었다. 안영이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여자가 그렇지'라며 화를 내고, 안영이가 정말 잘못한 일에는 더 크게 화를 냈다. 하지만 이후에는 점차 안영이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철저히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하 대리. "하 대리는 회사에 있을 법한 사람이죠. 문제가 생겼을 때 차근히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냥 다른 것뿐이에요. 인간의 여러 군상을 보여주는 거죠." 하 대리에 대한 해석을 한 전 동문은 "하 대리의 성격이 실제 성격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실제로 말을 부드럽게 못해요. 학창 시절에도 여자 후배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 선배였을 거에요."
미생은 바둑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일반 회사의 인턴 직원이 된 '장그래'를 중심으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전 동문은 미생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 얘기, 아는 동생 얘기고, 주변 형 얘기에요. 샐러리맨의 얘기지만 사실 무대를 어디로 옮겨도 공통되는 얘기입니다. 슈퍼맨이 없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죠." 바둑용어인 '미생'은 돌이 아직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아직 안전하게 '생'(生)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전 동문은 "나도, 너도, 우리의 삶은 모두 미생"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찾아가는 연극 해보고 싶어
전 동문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올해 연기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라고 입을 뗀 전 동문은 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연기를 하는 나는 아무런 힘이 없고, 스스로가 너무나 작은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그 때 우리 사회와 연결된 얘기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꼭 의미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미생이 끝난 지금 전 동문은 다시 깊은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는 연극으로 돌아 갈 생각 중이다. 전 동문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연극 관람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연극의 소중함을 말했다. "저희가 준비한 연극을 보려면 대학로라는 특정 공간에 와야 합니다. 극 시작이 지연되면 관객들은 길거리에 서서 극이 시작하길 기다려야 돼요. 그리곤 등받이도 없는 관중석에서 몇 시간이나 앉아서 연극을 감상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견디고 연극을 보러 와주는 관객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을 보여주고 싶어요."
최근 전 동문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연극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객들뿐 아니라 찾아오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도 직접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극과 같은 공연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이 정말 많아요. 연극을 가까이할 환경도 줄었고요. 예전에는 연말이면 교회에서 예수 탄생 연극을 하고, 학교에서 학예회 때 연극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학업에 너무 치중을 하면서 기회와 환경은 줄고, 아이들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죠. 여유를 잃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연극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행복해지겠지만, 저도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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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 기자 shaoran00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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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