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섭 토토사이트 가입하면(인문대∙수행인문학)

"벨라 타르의 영화를 통해 깨닫는 무의미한 삶의 가치"

 

'영화 예술의 장인', '헝가리 영화계의 거장'. 모두 영화감독 벨라 타르(Bela Tarr)를 지칭하는 말이다. 국내에는 다소 알려지지 않았지만, 벨라 타르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명감독이다. 벨라 타르의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도 단 한 곡 뿐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 없이도 깊이 있는 감동을 선사할 줄 안다. 부가적 요소가 아닌 영상 그 자체로 깊은 감정을 이끌어 내는 영화, <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을 이형섭 토토사이트 가입하면(인문대∙수행인문학)와 함께 살펴봤다.

 

지리멸렬한 반복, 우리 삶의 거울


1889년 1월 3일. 산책에 나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을 보게 된다. 말을 지켜보던 니체는, 갑자기 말에게 달려가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통곡하기 시작한다. 그 후, 니체는 발작을 일으켜 10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니체의 발작,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말’에 시선을 돌린다. 마부가 거칠게 채찍질 하던 말(馬)은 어떻게 됐을까. 그 의문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을 홀린다. 거세게 불어오는 광풍을 맞아가며 앞으로 힘들게 나아가는 말과 마부는, 별다른 설명과 대사 없이도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 이 말과 마부가, 니체의 일화에 소개된 ‘그 말’과 ‘그 마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화면을 가득 채운 말과 마부의 힘겨운 사투에서 치열한 감정만이 명확하게 전달될 뿐이다.

 

시종일관 우울한 분위기는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광풍은 하루하루 거세게 불어오고, 황량한 황무지에서 마부와 딸은 기계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뿐이다. 이렇게 우울하고, 기계적인 삶의 반복이 영화 전체를 채운다. 매일 아침이 되면 마부는 ‘약초 술’을 마시고, 삶은 감자를 한 손으로 으깨 먹고, 딸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고 말과 함께 나선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말을 끌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삶은 감자를 먹고 잠이 든다. 이 반복적인 삶에서 마부와 딸은 어떤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이 교수는 현재 대학생의 삶과의 공통점을 지적한다. “현재 대학생들의 삶을 보면, 끊임없는 반복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런 반복이 왜 이뤄지는지, 왜 견뎌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삶 자체가 반복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지만, 적절한 사유와 고찰 없이 반복된 일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지루하고 우울한 일상의 반복 속에 서서히 분열이 생긴다. 말은 여물을 먹지 않더니, 결국 움직이기조차 거부한다. 어느 순간 우물은 말라버리고, 기름이 충분함에도 램프에 불조차 붙지 않는다. 이웃집의 남자는 세상의 파멸을 외치고,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는 집시들은 성경을 딸에게 집어 던지고 떠난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짐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국 마부와 딸은 집이라는 공간을 포기하지 못한다. 마부는 생 감자를 억지로 먹으면서 딸에게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딸은 아무 희망도 생각도 없다. 이제 순서는 바로 그들 부녀, 즉 세상 전체의 소멸인 것이다.

 

   

 

극장을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쉬운 감정’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여러 측면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우선 기존의 상업영화에 익숙한 대중에게 굉장히 생소한 구성이라는 점과, 일반적인 영화와 다른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이 영화를 대학생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한다. “할 말이 많지 않아서”다. “영화 자체의 감정의 깊이가,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막히지 않는 영화를 권하고 싶었습니다. 자막 때문에 영상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기 보다, 영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근래의 상업 영화들은 ‘쉬운 감정’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은 할 수 있지만, 쉽게 느끼고 쉽게 사라지는 감정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감정이입이 값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너무 쉽게 올라오고 쉽게 내려가는, 영화 보면서 슬퍼서 엉엉 울다가, 극장을 나오는 순간 저녁은 뭐 먹을지 걱정하는 그런 감정이라는 거죠.”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그 상황이나 행위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일까. “어차피 내가 다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가학적인 행위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합리화하는 측면이 있죠.” 관객이 영화와 동일선상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토리노의 말>은 관객들의 감정이 철저히 캐릭터의 감정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도록 한다. 보통의 영화가 많은 일들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반면 이 영화는 사소한 일상 행동 하나하나를 그대로 재현해 냄으로써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캐릭터와 같은 위치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처절하게 공감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영화를 예로 들어보면, 라면을 끓여서 먹는 과정이 온전히 재현되지 않습니다. 끓이는 과정을 적당히 보여주다가, 어느새 등장인물이 라면을 먹고 있죠. 대중들은 이런 식의 리얼리티에 익숙한데, 오히려 라면을 끓여서 먹는 30분 정도의 과정을 다 보여주면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같은 속도로 보여주는 것이 왜 견디기 힘든 것일까. 이 교수는 이 부분을 대학생의 현실 인식에 관한 문제로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가상 현실을 통해 현실을 인식합니다. 이런 가상 현실을 통해서 제시되는, 빠르고 압축적인 전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인지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실제 우리의 삶은 마치 이 영화처럼, 길고 긴 반복의 연속인데도 불구하고, 압축적으로 제시되는 가상현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진짜 삶을 견뎌내기가 더욱 힘든 것일 수 도 있다는 이야기다.

 

‘무의미한 삶을 살자’

 

   

<토리노의 말>은 다분히 상징적인 요소들로 점철돼 있다.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해석도 다양하다. 혹자는 니체의 철학 사상과 관련해 영화를 해석하고, 혹자는 반 신학적인 구도로 영화를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꼭 이런 해석이나 의미를 찾아내는 것에 열중해야 하냐고 묻는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의미를 찾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영화가 지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영상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꾸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는 거죠.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행위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며 어떤 함축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듯이, 그 자체로 즐겁게 느껴질 때 더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영화에서나 인생에서나 의미를 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기호의 세계를 현실에 접목시키듯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가짜 지식인 행세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혹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 동안 허비한 시간들은 어떡합니까. 우리는 의미위주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은 되려 우리 인생을 너무 고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우진 학생기자 wjdnwls@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명지 사진기자 jk6180@naver.com

 

저작권자 © 토토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