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승 호빵맨토토(인문대·사학)
교학사 국사교과서 논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학사 국사교과서는 '우편향적' 역사관으로 지난해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 해석은 '일제의 입장을 이해해보자'는 서술로 공분을 샀다. 때문에 현재 교학사 국사교과서의 채택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가 무엇인지 박찬승 교수(인문대·사학)와 함께 알아봤다.
일제시대 서술, 곳곳 허점투성이
일제시대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 교학사 교과서. 먼저 일제시대 조선 말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서술했다. 교과서에서는 '조선의 유생들은 망국의 책임을 반성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인용문도 아니며 사료에서 따온 것도 아니다. 저자들의 자체 서술인 것.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조선 말 유생들은 망국의 책임을 지기위해 의병활동에 나섰다. 유익현 등 대부분의 의병대장이 유생출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망국의 치욕을 참지 못해 자결한 사람도 많았다. 유생들이 망국의 책임을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서술이다. 이에 박 교수는 "저자들은 조선이 망할만 해서 망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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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학사 교과서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서술이 논란이 되고 있다. 먼저 교과서에서는 '일제가 근대적 시간관념을 지키기를 강요해 근대적인 시간관념이 생겼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실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바뀌었을 뿐이다.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일본 덕분'이라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서술이다. 또한 교과서는 일제의 호남평야 간척사업과 수리조합 서술에 많은 양을 할애했다. 일제 덕분에 농사 지을 땅이 늘어났다고 여기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농민들은 이 수리조합에 반감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수리조합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이를 서술하고 있지 않다.
박 교수는 "이 책에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서술이 보인다"며 "일제 덕분에 근대화를 이룩해 잘 살게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명백히 잘못된 관점"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당시 조선의 소득과 쌀 생산량이 올라간 것은 맞지만 이는 조선에 온 일본인들의 소득이 올라갔기 때문이고 쌀의 경우 본국으로 수탈해 간 쌀의 비율이 점점 많아졌다"며 "당시 조선인들은 양식이 없어 만주나 러시아로 농업이민을 가야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교과서는 이광수, 최남선, 김성수 등의 친일인사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광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무정을 남겼고, 최남선의 경우 3.1운동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업적이 있지만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다. 특히 인촌 김성수는 따로 꼭지를 만들어 다루고 있다.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보성전문학교(現고려대)를 인수해 학장을 지낸 인물. 하지만 후에 일제의 입장에 찬동하는 행적을 보였다. 업적은 있지만 존경받을 인물들은 아니다. 박 교수는 "업적이 있더라도 친일행적 등 본받을만 하지 못한 점이 있는 인물은 가급적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것이 좋다"며 "하지만 이 책은 최남선 및 김성수 등 문제있는 인물을 크게 다뤘다"고 말했다.
중립성이 부족한 현대사 서술
일제시대만 문제가 아니다. 현대사의 권위주의 정권도 미화했다. 기존 교과서가 현대사를 경제발전 등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에 맞춰 서술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설명이다. 박정희 군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장면 정부가 무능했기 때문이라는 것. 공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군부 정권 성립까지 긍정한 부분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와 같은 서술은 민정에 문제가 있으면 군대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읽힐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또한 10월 유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닉슨독트린(Nixon Doctrine, 1969년 발표한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정책)'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닉슨독트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영향력이 약해져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유신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미·중간의 긴장은 완화되는 분위기였다. 남북한 관계도 7.4 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등 긴장이 완화되는 추세였다. 하지만 국제정세와는 반대로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박정희 정부가 닉슨독트린을 역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서술이 왜곡됐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이유로 재판받은 사실도 누락했다.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대해서도 다른 책에 비해 인색하게 서술했다.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은 다른 교과서에 비해 부실하다. 특히 4.19 혁명은 축소서술했다. 다른 교과서의 반절 수준이다. 관련자료 역시 이승만의 하야담화문, 5.16 혁명공약, 10월 유신선언. 4.19 선언문이나 유신반대선언문 대신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지하려던 선언을 주로 실었다. 박 교수는 "이 책의 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것이 권위주의정권이라고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역사교육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 반성할 점은 반성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부분은 자긍심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며 "하지만 교학사의 교과서는 비판해야 할 부분은 비판하지 않고 다른 부분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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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원 학생기자 son762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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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민 사진기자 marie91@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