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동노인복지관서 지역 어르신과 청년이 함께 만든 무대
세대 갈등과 사회적 예술의 가능성 모색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 공동 창작한 포럼연극 <어서 오세요 까끄까 뽀끄까에>가 무대에 올랐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송정동노인복지관 강당에서 선보인 해당 공연은 단순한 관람형 연극이 아니었다. 공연 중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관객은 자신의 의견을 내고, 등장인물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방향을 제안했다. 관객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스며들었고, 배우들은 그 의견을 토대로 이야기를 바꾸며 다시 연기했다. 연극은 그렇게 관객과 '함께' 완성됐다.

 

▲ 지난 6월 9일, 송정동노인복지관 강당에서 포럼연극 '어서 오세요 까끄까 뽀끄까에'가 성황리에 무대를 마쳤다. ⓒ 박연주 학생
▲ 지난 6월 9일, 송정동노인복지관 강당에서 포럼연극 '어서 오세요 까끄까 뽀끄까에'가 성황리에 무대를 마쳤다. ⓒ 박연주 학생

이날 무대는 세대 간 갈등을 함께 바라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공동의 장이었다. 청년과 노년, 배우와 관객, 학교와 지역이 한 공간에 모여 연극을 매개로 서로를 마주 봤다. 이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는 갈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갔다는 점이다. 포럼연극의 참여적 형식을 바탕으로, 예술이 사회적 연결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이번 공연은 2025년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QBL 및 IC-PBL 수업과 연계해 토토사이트 펫 학생들이 지난 3월부터 공동 창작해온 결과물이다. 이들은 송정동 일대를 직접 탐방하며 동네의 특성을 극에 반영했다. 특히 공연 장소인 송정동노인복지관은 그간 토토사이트 펫와 지속적인 문화예술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공간으로, 이번 공연은 송정동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실제 관객으로 참여해 자신의 삶을 투영하며 소통한 현장이었다.

 

작품의 주요 갈등은 무엇인가

작품의 주요 배경은 송정동 골목에 있는 '까끄까 뽀끄까' 미용실이다. 이 미용실은 실제 동네에 있는 오래된 미용실을 모티브로 구상됐다.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미용사 ‘영숙’과, 그 맞은편에 새롭게 문을 연 젊은 미용사 ‘다은’ 사이의 갈등이 중심 이야기다. 한 외국인 관광객이 영숙의 미용실 ‘까끄까 뽀끄까’에서 의사소통 문제로 원치 않는 스타일의 머리를 하게 되고, 이를 다은의 ‘글로우헤어’에서 고쳐받는 과정이 유튜브에 게시되며 갈등은 격화된다. SNS 시대에 ‘망한 머리 고치기’ 콘텐츠가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영숙은 다은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비방했다고 오해하며 갈등을 겪는다.

 

▲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 미용실을 둘러싼 오해와 충돌은 ‘망한 머리 고치기’ 영상의 유포로 폭발하게 된다. ⓒ 박연주 학생
▲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 미용실을 둘러싼 오해와 충돌은 ‘망한 머리 고치기’ 영상의 유포로 폭발하게 된다. ⓒ 박연주 학생

작품은 송정동이라는 공간이 지닌 분위기와 정서를 담아낸다. 연출을 맡은 박연주(연극영화학과 석사과정) 씨는 “지역을 탐방하며 만난 동네 미용실, 어르신들의 말투, 상권의 분위기까지 모두 대본의 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송정동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켠에는 오래된 미용실이, 다른 한켠에는 성수동으로 확장돼 가는 청년 창업 상권이 자리잡고 있다. 박연주 씨는 “이질적인 것들이 한 동네 안에 섞여 있는 풍경 자체가 극의 주요한 모티프가 됐다”고 말했다.

 

▲ 작품의 배경이 된 송정동의 실제 골목 미용실. 동네 어르신들과 공간의 분위기가 극의 주요 모티프가 됐다. ⓒ 박연주 학생
▲ 작품의 배경이 된 송정동의 실제 골목 미용실. 동네 어르신들과 공간의 분위기가 극의 주요 모티프가 됐다. ⓒ 박연주 학생

 

질문을 던지고 응답 받는 연극

작품은 브라질 연출가 아우구스토 보알이 고안한 '포럼연극(Forum Theatre)' 형식을 차용했다. 연극은 일부러 결말을 맺지 않고 열린 구조로 진행되며, 관객이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제시하며 극의 흐름에 개입한다. 이날 공연에서도 어르신들은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발언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을 지적하거나 대안을 제시했다.

공연에서는 실제로 한 어르신이 "(유튜브) 영상을 일단 내리고, 둘이 함께 오해를 푸는 영상을 찍어 올리면 어떻겠냐"는 식의 해결안을 제안했고, 배우들은 이를 반영해 결말을 재구성했다.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이 극의 갈등을 푸는 전환점이 됐다. 박연주 씨는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 나왔을 때, 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장면에서 연극의 힘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 포럼연극의 핵심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하고, 극의 방향을 함께 결정했다. ⓒ 박연주 학생
▲ 포럼연극의 핵심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하고, 극의 방향을 함께 결정했다. ⓒ 박연주 학생

관객과의 실시간 상호작용은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주연 배우 박시현(연극영화학과 석사과정) 씨는 “연습 전에는 노년 세대의 느림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연극을 통해 그들이 마주하는 삶의 리듬과 태도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오히려 내가 그들에 대해 거리감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시현 씨는 64세의 미용사 '영숙'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컸던 노년 세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지역 미용실을 찾아가 일상을 관찰하고,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참고하며 인물을 구체화해 나갔다. 그는 “노년 세대의 느린 속도, 일에 대한 자부심, 익숙한 방식에 대한 고집이 캐릭터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습을 거듭할수록 그 고집 뒤에 있는 삶의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고, 낯설었던 세계가 점차 익숙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을 보신 어르신들이 ‘우리 동네 사람 같다’고 말씀하셨을 때,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공감이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예술, 공존의 가능성을 묻다

처음에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어르신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박연주 씨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조심스러워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관 방문과 지역 탐방을 거치며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다. 박연주 씨는 "어르신들이 먼저 다가와 반응을 보여주면서 학생들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교류가 시작됐고, 작품에 담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김석윤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어르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관객의 질문에 응답하며 장면을 바꾸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체감하게 됐다"며 "추상적이던 사회적 예술 개념이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 본 공연을 앞두고 장면을 함께 구상 중인 학생들의 모습. 관객 참여를 전제로 한 포럼연극은 연습 단계에서도 다양한 흐름과 반응을 대비해야 했다. ⓒ 박연주 학생
▲ 본 공연을 앞두고 장면을 함께 구상 중인 학생들의 모습. 관객 참여를 전제로 한 포럼연극은 연습 단계에서도 다양한 흐름과 반응을 대비해야 했다. ⓒ 박연주 학생

그는 “학생들이 관객과 함께 극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특정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설계하는 감각을 배워갔다”며 “단순히 문제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포럼연극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예술은 단지 결과물 하나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예술 행위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실천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 보는 시간이었다”며 “학생들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 감수성, 사회적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 함께 오른 어르신 관객들과 배우들의 모습. ⓒ 박연주 학생
▲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 함께 오른 어르신 관객들과 배우들의 모습. ⓒ 박연주 학생

그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참여형 생활예술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고 있지만, 시민사회에 뿌리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서울문화재단의 생활문화 참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의 절반 이상이 '예술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고 응답했다. 시간과 비용, 정보의 부족이 주요한 이유로 꼽혔다. 김 교수는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이 지역과 연결돼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극은 세대와 지역, 학교와 공동체가 한 공간에서 갈등을 마주하고 질문을 나눈 실천이었다. 극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듣고, 관객과 함께 해법을 구성해가는 경험은 공존의 가능성을 실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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