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지휘자의 길을 걷는 학군사관 후보생의 삶 조명
오전 6시. 태양의 불그스름한 기운이 서서히 올라올 즈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몸에 밴 습관에 따라 이불을 고이 접어 정리한다. 단복을 갖춰 입고 베레모를 쓰면 나갈 채비가 끝난다. 조용하지만 기품 있는 모양새로 집을 나서는 이들. 우리는 이들을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학군사관 후보생)라 부른다. |
학군사관 후보생의 삶
![]() | ||
▲ ROTC 55기 후보생들이 지난 29일 오전 체력단련 차 캠퍼 스를 누비고 있다. 인솔자의 구호에 맞춰 뛰고 있는 후보생들 의 모습 |
ROTC의 공식 명칭은 학군사관 후보생이다. 이들은 3학년 때 학군단에 들어와 4학년 때까지 후보생으로 생활한다. 임관 종합평가에 합격하면 장교 자격을 받고 향후 2년 간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 때문에 후보생의 생활은 임관 종합평가 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관을 위해선 기초 체력뿐만 아니라 올바른 국가관을 갖추고, 군사지식 및 기술을 익혀야 한다. 후보생들의 일과는 이에 따라 구성돼 있다. 매일 아침은 운동과 함께 시작한다. 요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체력 단련이 주 2회 진행된다. 오전 8시부터는 2시간 가량, 역시 주 2회 군사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후에는 전공 및 교양 강의를 들으며 여타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오후 6시쯤 정규 수업이 끝난다. 후보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군사학 서적을 읽거나 교육용 동영상을 시청하며 군사학 지식을 쌓는다. 특히 임관 종합평가를 앞둔 4학년들은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다. 자신의 ‘국가관’이나 ‘안보관’ 등을 주제로 한 리포트를 매주 작성해야 하는 것. 오후 체력 훈련까지 마치려면 저녁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모든 활동의 참여 여부를 자율에 맡기곤 있지만, 장교가 되려면 게으름은 금물이다. 아래는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의 후보생들과 나눈 인터뷰다.
![]() | ||
▲ 왼쪽부터 후보생들이 이용하는 체력단련실과 의복 및 장구류 등을 보관하는 사물함의 모습 |
아버지의 뒤를 이은 이희권 후보생
![]() | ||
▲ 이희권(국제학부 4) 씨를 3월 25일 만나 학군사 관 후보생의 하루 일과에 대해 들었다. |
ROTC 55기 이희권(국제학부 4) 씨는 ROTC 24기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군사관 후보생이 됐다.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싶었죠.”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1학년 때 도전했다 국사 시험 탓에 낙방한 그는 절치부심해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2학년 때 당당히 합격했다. 이 씨는 임관 종합평가를 앞두고 차근차근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오전 체력 단련은 구보로 시작해요. 운동장을 여섯 바퀴 돌고 나서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계속 하죠.” 체력 평가에서 2급 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팔 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중심으로 운동을 한다.
이 씨의 입을 통해 군사학 수업과 훈련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군사학은 매 학기 수강합니다. 정신교육이나 인성교육을 받고,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과 교수법에 관해 배우기도 해요. 훈련 때 받을 교육을 선행학습하기도 하죠.” 개인화기(총기, 수류탄 등), 각개전투(포복, 총검술 등 개인별 전투훈련), 분대전투(보통 9명으로 구성된 분대 단위별 전투훈련) 등의 군사 교육은 방학 때 진행되는 동, 하계 훈련에서 실전 연습으로 이뤄진다. 이 씨는 “동계에는 2주 동안, 하계는 한 달 동안 훈련한다”며 “학기 중에 이론으로 배운 것을 경험해보는 시기라 힘들면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이 씨는 본래 감성적이고 장난기 많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후보생으로 생활하며 더 의젓하고 대범해졌다고 자평한다. 처음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다 제 이름을 호명했는데, ‘후보생 이희권!’을 외친 적이 있어요. 군인 생활이 몸에 배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죠.” 이 씨는 후보생들의 전유물인 의문의 가방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기도 했다. “손에서 10센티미터만 떨어져도 폭발한다는 농담까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쉽게도 일반 책가방과 다를 바가 없어요. 책, 필기구, 노트북이 들어가죠. 하지만 단복에 백팩을 맬 수는 없잖아요(웃음)”. 이씨는 직업 군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선 아직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대학생이자 후보생으로서 맡은 임무는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다.
여성 군인을 꿈꾸는 박현민 후보생
![]() | ||
▲ 박현민(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 4) 씨를 3월 24 일 만나 여자후보생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ROTC 55기 박현민(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 4) 씨는 지난해까지 ERICA 캠퍼스에서 단 한 명뿐인 여자 후보생이었다. 장교출신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군인을 꿈꿨다. “장래희망 칸에 항상 군인을 적었죠. 당연히 군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박 씨는 원래 육사를 목표로 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좌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대학에 진학해 담담하게 ROTC의 길을 걸었다. “주로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잠들어요. 군이 시행하고 있는 시간표에 맞추려고 하죠.” 박 씨는 남자 후보생들과도 똑같은 일과를 소화해낸다. 체련 훈련 일정에도 남녀 차이가 없다. 박 씨는 남자 후보생들과의 체력적인 간격도 메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후보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군사학 수업이 있는 날에는 단복을 입어야 하는 규정이 있어요. 복장을 갖추고 다니다 보면 주위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죠. 심지어 대놓고 신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입단 전까지 이런 시선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힘든 때도 있었단다. “처음 한달 간은 식당에 갈 때 늘 소화제를 챙겼어요. 주위 시선을 신경 쓰느라 밥을 편하게 못 먹은 거죠.”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제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박 씨다. 오히려 단복을 입지 않고 있을 때도 행실을 조심하게 됐다고.
박 씨는 씩씩하고 자존심이 센 성격의 소유자다. 동, 하계 훈련을 받을 때도 이 악물고 버티는 그녀다. “'여자라서 약하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박 씨는 56기 여자 후보생이 들어오기 전까지 학군단 내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다. 이성 간에는 털어 놓지 못할 이야기, 여자로서 겪는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없어 외롭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박 씨는 막연하게라도 ROTC를 꿈꾸고 있는 여성들에게 말했다. “'노력할 가치가 없는 일은 없다’고 해요. 여군은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한 분야입니다. 두려워 말고 도전정신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길이 다른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박 씨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밤 11시 30분. 후보생들은 평범한 학생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잠자리에 든다. 각 잡힌 채로 놓여 있는 베레모(단모)는 빽빽한 하루 일정에도 흐트러짐 없는 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장교가 되기 위해 조금 다른 캠퍼스 생활을 하는 이들. 대한민국 국군을 이끌어 갈 학군사관 후보생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 | ||
▲ 두 후보생은 모두 임관 종합평가를 앞두고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 국군의 앞날도 밝다. |
글ㆍ사진/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