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자 「당나귀 귀를 가진 동·서양의 두 임금님」 기사

고운기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8월 31일 자 <한국일보>에 칼럼 ‘당나귀 귀를 가진 동·서양의 두 임금님’을 기고했다.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과 신라의 제48대 경문왕은 둘 다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 교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비교해 읽다 보면 닮은 듯 다른 두 운명과 마주친다”고 소개했다.

고 교수는 “‘가여운 미다스’라는 말이 있다”며 “’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불운하고 가난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미다스는 디오니소스로부터 ‘황금의 손’을 선물 받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변하면서 사태가 심각해진다. 마법에서 겨우 벗어난 이후에는 아폴론의 화를 돋워 ‘당나귀 귀’ 벌을 받게 된다. 오직 그 비밀을 알던 이발사는 참다못해 외딴 시골 깊은 곳에 구덩이를 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소리는 퍼져나갔다.

미다스 왕이 ‘삼국유사’에 오면 경문왕이다. 고 교수는 경문왕에 대해 "성품이나 행실이 미다스 왕을 닮았다”며 “왕위는 물론 선왕의 딸 둘을 모두 왕비로 맞는 경사가 겹쳤지만, 미다스처럼 경사는 거기까지였다”고 설명했다. 경문왕은 저녁마다 뱀으로 표상되는 사병(私兵)을 곁에 두어 스스로 지켜야 했다. 또한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 같아진 불운이 찾아왔다. 이 비밀을 평생 지키던 기술자는 죽을 무렵,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를 외쳤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대나무는 확성기로 제격이었다.

고 교수는 두 왕에 대해 “미다스 왕의 황금 손은 신들의 주사위에 놀아나는 인간의 운명을 나타내지만, 경문왕은 훨씬 정치적으로 현실화되어 뱀으로 몸을 덮고 산수유로 말문을 막아야만 지켜지는 외로운 권력자의 표상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여운 미다스’보다 더 ‘가여운 경문’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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