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자 「둔한 왕, 멍한 신하」 기사

고운기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9월 25일 자 <한국일보>에 칼럼 '둔한 왕, 멍한 신하'를 기고하였다. 고 교수는 처용 이야기는 '처용랑 망해사' 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고 교수는 이어령 선생의 지적은 여기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바야흐로 신라 말기, 이 조는 헌강왕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산천의 신에게 지혜를 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네 가지 사건으로 누벼진다. 처용 이야기는 동쪽으로 갔을 때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야기 전체를 보고 낱낱을 해석해야 본뜻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었다. 마땅히 옳은 말씀이다.
물론, 처용이 단연 튀기는 한다. 그러나 남쪽에서 벌어진 사건도 의미 면에선 못지않다. "왕이 포석정에 갔을 때이다.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는데, 곁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만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앞에 나서서 춤추니, 왕이 손수 따라 춤을 추며 형상으로 보여주었다"는 대목이다. 왕의 춤은 환락이 아니었다. 산신은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춤을 추어 경고한 것이었다. 왕이 그것을 따라 했는데, 신하들은 흥겨워 추는 춤인 줄 알고,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며 탐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나라가 망하는 과정, 실로 처용 이야기도 본질은 거기 있었다.
위기를 직감한 왕은 널리 지혜를 구하러 다닌다. 헌강왕이 현군은 아니었으되,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법. 왕의 눈으로 보니 나라 꼴이 심상치 않았겠다. 그래서 동해 용과 남산의 신을 비롯해, 서쪽으로 가서 지백급간(地伯級干)을, 북쪽에서 금강의 신을 만났다. 이들 모두 신라의 수호신이다.
그러나 왕 혼자 용쓴들 신하가 알아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왕이 춤을 추자 신하들은 그저 신나게 따라 할 뿐이다. 이어령 선생의 지적은 여기서 본뜻을 찾아야 할 듯하다. 곧 춤의 메시지다. 왕의 눈에만 보인 신들의 춤은 위기 극복의 해결책을 담고 있을 터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것은 왕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냥 따라 추며 신하들에게 보여주지만, 진심 없는 답은 엉뚱한 데로 흐르고 말았다. 위는 둔하고 아래는 멍할 뿐이면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도 날리고 만다. 고 교수는 "이것이 어찌 신라만의 일이랴."라고 언급하며 칼럼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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