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촌 활동을 위해 380여명 학생 논산으로

봄, 배움, 인연이 있는 농촌

 

제1공학관 앞에 포스터가 붙었다. 함께 떠나자는 손짓이 보인다. 총학생회에서 함께 토토사이트 마초을 떠나자고 부르는 포스터다. 매년 4월말 즈음이면 토토사이트 마초을 준비하는 학과별 학생회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떠나볼까, 생각하다 일순 겁이 난다. 농촌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다. 사실 벼와 보리도 구분 못한다. 괭이와 쇠스랑은 서로 다른 물건이던가. 혹시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떠나고 싶은 마음과 겁이 나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한다. 토토사이트 마초. 떠날까, 말까.

 

토토사이트 마초, 농촌계몽운동에서 중앙토토사이트 마초까지


'농촌 활동'의 기원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농촌계몽운동', 1930년대의 '브나로드 운동'(V narod, '민중 속으로'를 뜻하는 러시아 말로,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계몽운동의 하나)이 최초의 농촌 활동으로 여겨지는데, 흔히 알고 있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 역시 1930년대의 '브나로드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기의 농촌 활동은 모두 지식층의 농민 계몽을 목적으로 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농촌 활동이 특히 농민들의 계몽적 의식을 일깨우는 방향을 향해갔지만, 대학생들이 농민들을 의도적으로 농민 운동에 참여하도록 의식화 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며 농촌의 일손을 돕고 학생들의 사회 체험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최근에는 농촌 활동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이 생기면서 농촌 활동을 가는 학생들의 수가 줄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농촌과 가까워지기 위해 서울을 떠나고 있다. 우리대학 역시 각 단과대별로 농촌 활동을 가기도 하고, 총학생회가 '중앙토토사이트 마초'이라는 이름으로 단과대학 구분 없이 함께 할 학생들을 모아 농촌으로 떠나기도 한다. 총학생회는 봄, 여름, 가을, 일 년에 총 세 번 농촌 활동을 기획한다. 농번기인 여름에는 6박 7일이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고, 봄과 가을에는 3박 4일의 일정을 꾸린다. 여름보다 비교적 간단하게 떠날 수 있는 이번 봄 농촌 활동에는 각기 다른 학과에서 모인 380명의 학생들이 논산으로 떠났다. 농촌 활동 장소인 논산은 전국농민회총연맹과의 협의를 통해 정해진 곳으로, 우리대학은 3년째 논산으로 향하고 있다. 15명에서 20명의 학생들이 한 단위로 나뉘어 일손이 모자란 논산의 여러 마을을 찾았다.


먹거리는 우리 삶의 기본

 

   

마을마다 있는 마을 회관과 노인 회관은 학생들이 3박 4일동안 자고, 먹고, 씻고, 휴식하는 공간이 됐다. 마을에 도착한 학생들은 짐을 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본격적인 농촌 활동(이하 농활)은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총학생회의 중앙농활주체 이경은(인문대·국문 3) 씨는 농활을 하는 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설명해줬다. "보통 아침 5시에서 6시 사이에 기상을 합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지만, 중간에 점심을 먹고 두 시간쯤 쉰 후에, 새참도 먹으면서 일을 해서 엄청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농활을 간 학생들이 일만 하다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씨는 농촌에서 일하는 시간 이후 학생들이 갖는 교양 프로그램 시간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학생들 스스로 밥을 지어 먹는 저녁 시간 후에는 농촌의 상황에 대해 공부하는 교양시간이 있습니다. '교양시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번에는 쌀 시장 개방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약,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표로 2005년에 체결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 외에도 학생들 스스로 하루를 반성하거나 뒷풀이를 하는 시간을 가져요."

 

이 씨는 농활의 가장 큰 의미를 '봉사와 구성원간의 소통'으로 꼽았다. "농활은 봉사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손을 거들어드리고 오는 것이죠. 한 편으로 농활은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이기도 합니다. 대학생과 농민이라는 같은 사회 일원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요. 쌀 개방이나 먹거리와 같은 농민의 문제를 우리가 왜 알아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먹거리의 문제는 우리의 기본적인 삶과도 연관돼 있어요. 농민 문제로만 치부하는 순간, 우리의 삶에 피해가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농활을 보는 시선이 늘 고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씨는 여전히 농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농활이 정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농촌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먹거리에 대한 기본적 관심과 이해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본이잖아요."

 

딸기와 인연, 동시에 수확해 가다

 

   

학과에서 농활을 가지 않은 박인구(공과대·전기생체공학 1) 씨는 올해 중앙농활에 참여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 향한 농활 장소는 논산 광성면 항월 1리. 박 씨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마을회관을 보고 처음에는 "여기서 3박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고. "이 곳은 이삼십년만에 학생들이 농활을 오는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마을 분들도 처음에는 학생들을 어색해하셨어요." 그러나 아침마다 함께 딸기밭으로 향하고, 오전 내내 일을 한 후 함께 새참을 먹으며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침 딸기 수확 철이라 농민들과 같이 딸기를 수확했습니다. 딸기의 특성 상 며칠만 수확이 늦어도 운송 중에 딸기가 많이 상한다고 해요. 그러면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지는데, 이번에 학생들의 도움으로 시기에 맞게 수확을 할 수 있었다고 하셨을 때 굉장히 뜻 깊었습니다." 딸기를 주로 재배하는 항월 1리에서는 새참도 특별했다.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는 딸기는 잼으로 만들어서 빵에 발라먹었죠. 정말 맛있었어요."

 

박 씨는 처음 만나는 타과생들, 그것도 나이 차이가 나는 형 누나들과 지내는 어색함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체'로 활동하며 하루 만에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농활을 가면 학생들 모두가 각자 특정 업무를 책임지는 '주체'가 됩니다. 청소 주체는 청소를 담당하고, 요리 주체는 요리를 담당하는 식으로요. 어떻게든 주체를 맡으려다 보니, 나중에는 벌레를 잡는 벌레 주체까지 생겨났어요." 칭찬 주체를 맡은 박 씨는 하루에 한 번씩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다리가 길다'든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하다가 나중에는 요리를 하는 사람에 옆에 불쑥 나타나서 '요리가 맛있겠다'는 식으로 뜬금없이 칭찬을 했어요. 덕분에 사람들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1학년인 박 씨는 농활을 통해 '추억'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대학교에 처음 올라와서는 고등학생 때에 비해 개인적인 삶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앙 동아리나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여하지 않고는 여러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는데, 이번 농활을 통해 많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요. 다른 과의 선배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혹 다음 농활에도 참여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박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정아 기자 shaoran00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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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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