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지만 토토사이트 가입하면는 하고 싶어>.

지난달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연애가 간절한 ‘모태솔로’들의 진심 어린 도전기를 담아내며 시청자의 공감과 응원을 등에 업고 큰 화제를 모았다. 모태솔로들뿐인가. 20·30대의 복잡한 감정을 다룬 <하트시그널>, 이별 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환승연애>, 남매가 서로의 연애를 도우며 짝을 찾아가는 <연애남매>, 그리고 무속인의 특별한 연애를 소재로 한 <신들린 연애>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연애 프로그램은 등장과 동시에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연애’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처럼 연애 시장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연애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까.

자칭 ‘연애 리얼리티 덕후’ 강다현(사회학과 4) 씨는 ‘공감’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찾는 이유로 꼽았다. 실제 드라마나 영화처럼 각색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인의 감정을 담아낸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날것의 감정과 진심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시청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경우 연애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보여주는 서툴고 조심스러운 감정 표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강 씨는 “모두에게 있는 ‘처음’을 다시 함께 느끼는 기분이었다”며 “내가 들어가서 조언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몰입했다”고 말했다. 또한 주변 친구·가족과 함께 시청하며 각자의 연애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이 프로그램들의 장점으로 꼽는다. 이처럼 감정에 깊이 몰입하고 함께 해석하며 소비하는 ‘참여형 시청’이 요즘 연애 프로그램이 갖는 새로운 특징이 되기도 한다.

N포시대(여러 중요한 가치를 포기한 세대)라 불리는 오늘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오히려 더 큰 공감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연애가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는 실제 연애에 따르는 시간·감정·비용 부담 없이 만남과 이별, 설렘과 아픔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위로와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의 외주화’를 가능케 한다. 이처럼 대중적 공감대, 간접 체험의 즐거움, 그리고 시청자 간의 경험 공유가 가능한 연애 프로그램은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세대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학과 전공과목 ‘성의 사회학’을 강의하는 허수연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역시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를 ‘대리만족’으로 설명했다. 허 교수는 “연애를 원하면서도 실제로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 이별의 상처, 교제폭력에 대한 공포, 사적인 감정이 대중의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데 대한 부담감 등이 대표적인 심리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그는 "연애 자체가 경제적 지출로 인식되는 현실도 청년들의 연애 회피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애 프로그램은 현실 연애의 감정적 측면만을 비교적 안전하게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어 인기를 얻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연애 프로그램 속 연애와 실제 연애는 유사할까. 강 씨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상황과 개인의 경험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으나,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유사하다"고 평가한다. 연애 프로그램 <솔로지옥>에서 여자 출연자가 세 명의 남자 출연자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상황은 누구나 겪는 상황은 아닐지 모르나, 누군가를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느끼는 난처함과 미안함은 보편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연애 프로그램 속 모든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은 결국 사랑이라는 공통된 감정에서 비롯되기에 공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실제 연애와 감정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어 시청자에게 관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강 씨는 "프로그램을 통해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연애에서 마주하는 갈등 상황이나 감정의 흐름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에 있어 일면적인 판단보다는 대화와 이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이는 실제 연애뿐 아니라 인간관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러한 콘텐츠 소비에 일정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자극적인 구성과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시청자는 이를 실제 연애의 모습으로 오인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문화에서는 연애마저도 제3자의 눈을 의식하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개인 간의 관계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연애’로 이어지며, 결국 정형화된 역할에 맞춰 연애를 수행하는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허 교수는 "연애를 통해 정서적으로 성장하고 자신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아닌 ‘평가받기 위한 관계’로 오해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에서의 연애가 각종 부담으로 인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간접적인 체험의 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단순한 ‘대리만족’의 수단을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연애 시장’을 비추고 동시에 그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연애 프로그램을 즐기면서도 그 안의 감정과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각자의 연애관을 자율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태도다. 타인의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이 곧 나의 관계 방식을 결정짓지 않도록 콘텐츠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의 감정과 판단에 귀 기울이는 균형 있는 콘텐츠 소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