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길 양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두르고 농촌과 동화돼"
2005년 무더운 날씨 속에 여름 농활이 시작됐다. 지난 17일 안산 동아리연합회가 대부도로 4박 5일간 여름농활의 첫 신호탄을 올린 이후, 21일 서울 총학생회도 대부도로 포도농활을 다녀왔고 현재는 서울캠퍼스 각 단과대학이 경상북도 상주에서, 그리고 안산캠퍼스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들이 경기도 평택에서 열흘 동안 농촌 활동 중에 있다. 이번 농활은 농촌활동을 통해 사랑의 실천을 행하고, 1학점의 사회봉사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장점으로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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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조율되지 못한 문제들로 따로 따로 무리지어 농활을 떠났고, 몇 학생들은 부족한 학점을 메워보려고 떠났을지라도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농촌으로 내딛은 발걸음은 한마음이었다. 지난 80년부터 시작된 농활.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노동과 흙, 굵은 땀방울’이 갖는 의미는 한결같은 농활의 현장을 ‘위클리 한양’이 엿봤다.
“포도봉지의 끝을 줄기에 꼼꼼히 여미어야 되요. 봉지 안으로 비가 들어가면, 포도가 다 썩어버리거든.”
대부도 포도농활은 이렇게 아버님의 포도봉지를 싸는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수 천 송이의 포도를 하나하나 봉지로 여미는 작업이 농활의 주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약 3천 평의 광활한 포도밭을 포도봉지로 점령하고 나가리라고 다짐했지만, 마음 먹은 만큼 손놀림은 따라주지 못했다. 포도 줄기를 꺾어 버리기도 하고, 포도송이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떨어진 포도 알을 아버님이 보실 세라 슬그머니 발로 땅을 파 포도 알을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손에 익어가고 실수도 줄고, 속도도 붙자, 5백송이 6백송이의 포도에 ‘대부도표’ 하얀 옷이 입혀졌다. 작업을 하다 포도 끝을 여미는 철사로 손이 아파오고 허리가 쑤셔,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싼 포도봉지들이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걸 보곤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며 아팠던 어깨가 저절로 가벼워졌다. 때마침 부르시는 어머님의 달가운 한마디
“참 먹고 해요.”
시원한 수박과 직접 키운 감자를 삶아 내오셨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달고 시원한 수박과 맛난 감자는 우리의 혼을 빼놓았고, 허겁지겁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참을 다 먹고 잠깐 쉬는 동안 아버님께서는 담배를 물으시며 포도농사 이야기를 꺼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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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포도나무들이 다 13년째 된 거예요. 나무가 늙었는데도 열매가 잘 열려. 옛날엔 이런 포도봉지가 개발이 안돼서, 신문지로 싸고 철사도 따로 잘라 여미었기 때문에 더 고생이 많았지. 그래도 그 때는 서로 품앗이도 하고, 일손도 있었는데 요즘엔 거의 없어. 그래도 학생들이 이렇게 도와줘서 한 달이 걸릴 껄 보름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네. 학생들이 손에 안 익어서 잘 못해도, 열심히 하려는 모습들을 보면 대견하고 고맙지.”
포도봉지 싸기는 계속 이어졌다. 조금 뒤 점심을 먹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다시 오후 농활이 시작됐다. 오전보다 더 손에 익어 포도봉지는 더 꼼꼼히 싸졌다. 나중엔 포도를 더 많이 싸고 싶은 마음에 들어오라는 말씀에도 조금 더하고 들어갔다. 저마다 ‘나는 8백장을 쌌다’, ‘나는 9백장 쌌다’고 이곳 저곳 일 자랑이다. 내일은 몇 백장을 하자며 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짙어지자 조촐한 술자리를 갖는다. 술상에는 여타 술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값진 안주가 나왔다. 바로 조원들이 근처 바닷가에서 직접 잡아온 골뱅이, 소라, 꽃게, 숭어가 그것. 그리고 귀중한 하루를 정리하는 이야기들은 더 맛있는 안주가 됐다. 정은길(경상대·경영 1) 양은 “우리가 와서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더 짐이 되진 않았는지, 혹여나 농사일을 망치지는 않았는지 조금 걱정도 되지만,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이 곳과 동화되는 모습이 좋다. 여기선 화가 날 일도 없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단지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자신이 키운 농작물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며 사시는 아버님 어머님이 부럽다”고 말했다. 문용기(공과대·재료공학 3) 군은 “포도 농사도 좋았지만 밤에 물 빠진 바다 갯벌에 경운기를 타고 들어가 숭어와 낙지를 잡아 올리고 그물을 털던 경험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대부도 농활을 기획한 총학생회 신재웅(사회대·정치외교 2)사무국장은 “뜨거운 햇볕으로 농활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의 얼굴과 팔이 까맣게 탔다. 비권, 운동권을 넘어서 아름다운 봉사를 했다는 햇빛 도장을 모두 받았다는 것으로 하나임이 증명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