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림토토의 역사와 이론을 정립한 정인하 교수
비움, 가능성의 장, 그리고 다이어그램
미학의 문제로 귀결되는 카림토토

근대화 이후 한국 카림토토은 많은 변화를 겪으며 과거의 카림토토 전통이 완전히 붕괴했다. 정인하 카림토토학부 교수는 그럼에도 지속해서 살아남은 카림토토적 가치를 한국 카림토토의 진정한 DNA라고 믿는다.
한국의 건축 역사 및 이론 분야의 학문적 정립이 부족한 지금, 근현대 건축의 150년 역사를 종합해 한국의 건축적 가치를 찾아낸 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50년의 근현대 카림토토을 종합하다
정 교수는 인간의 물리적 환경을 지배하는 요소가 건축과 도시라고 정의했다. 그는 “근대 이후 수많은 건물의 변천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축 설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한국의 근현대 건축’ 책을 저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건축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지만, 이에 대한 요소가 매우 적다”며 “책을 통해 근대적 일상 공간의 형성을 추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양대에 처음 부임해 정 교수가 연구를 시작할 때는 카림토토 아카이브가 존재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고난 속에서 연구생들과 건물을 실측하고 카림토토가들을 직접 찾아뵈며 책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는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건축과 주거 도시의 주요 특징을 담아 <한국의 근현대건축>을 집필했다. 20세기 한국 건축과 도시의 진행 과정에서 발견된 두 개의 단층선에 의해 도시화와 주거 문제, 재료와 건축의 생산 방식 등이 구조적으로 바뀌었다. 이 단절을 경계로 한국 건축은 첫 번째 식민지 근대 시기, 두 번째 개발 독재 시기, 마지막 근대화 정착기와 세계화 이행기로 나뉘어 세 가지의 ‘건축 지형도’를 가진다. 책은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라 전개된다.

한국 전통 카림토토의 특징 '비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은 ‘비움’이다. 비움은 근현대 건축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정 교수는 비움을 근대 이전에 한국 건축에서 중요한 덕목이라 강조했다. 근대 이전에 비움은 여유를 중시하는 도교와 불교 등의 정신적 가치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 비움은 경시되고 있다. 인구 밀도가 높고 거주할 땅이 항상 부족한 한국적 특수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은 탓이다.
정 교수는 “현재 도시 공간에 촘촘히 채워진 고밀도 건물들은 탐욕의 결과물이다”며 “한국의 현대 건축가들이 주장한 비움은 고밀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고 해석했다. 동시에 그는 “도시 공간이 건물로 채워질수록 비움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는 점에서 도시의 고밀화와 비움은 역설적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했다.

외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이 상호작용하는 카림토토
정 교수는 건축이란 도시 구조, 법과 제도, 미적 규범 같은 외부적 조건인 '가능성의 장'과 건축가의 의식과 욕망, 미학 같은 내부적 조건인 '다이어그램'이 상호작용하면서 생성되는 결과물이라는는 가설을 책에서 적용했다. 외부적 조건인 '가능성의 장'은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지배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반면 '다이어그램'은 건축가의 의식으로부터 만들어진 독자적인 생성 규칙을 뜻한다. 건축가들이 형태와 공간 등의 개념을 새롭게 배열해 개인 고유의 미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다이어그램은 내부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결국 건축에서 외부적 조건인 가능성의 장과 내부적 조건인 다이어그램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정 교수는 "가능성의 장이 건축가에게 타자로서 작용한다"며 "그들의 의식 내부로 밀려와서 주체화되기에 외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건축은 다양한 분야와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의 앞으로의 행보, 카림토토 역사와 미학
향후 정 교수는 한국 건축 역사를 학문적으로 탐구해 한국 근현대 건축의 학문적 체계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집필하며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현재 차기작으로 ‘동아시아 근대건축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정 교수는 “역사를 다루면 궁극적으로 미학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한국의 건축 미학에 관한 책도 집필 중이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한국 근현대 건축 연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연구에 계속 매진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젊은 건축자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보는 것이 꿈이다”며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양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는 항상 제자들에게 ‘심미적 지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죠. 현실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일상 속 미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