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사랑하는 법원, 국민들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우리대학 최초, 사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 박보영 동문(법학.80)이 임명 당시 밝힌 포부다. 대법관은 이 시대의 법과 정의, 양심에 있어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자리다. 동시에 국민에 대한 막대한 책임감이 주어진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법집행자로서, 최고 재판관의 자리에 박 동문이 서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보호를 담아내겠다는 박 동문. 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인터넷한양이 그녀와 마주했다.
우리대학 최초, 대한민국 사법역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987년 판사로 임관된 후, 법조인으로서 25년간 활동해왔습니다. 대법관 임명 전에는 한명의 판사, 변호사로서 개별사건을 중심으로 재판에 임했다면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법치주의의 일익을 담당하는 일 또한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일에 좀 더 매진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헌법에 명시돼있듯 대법관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현실적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와 달리 모든 구성원들이 국민이 선거에 의하지 않고 뽑힌 자리인 만큼 그 역할을 충실히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대법관으로 임명되시기 전부터, 인사 청문회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비주류’라는 타이틀로 많은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실제로 출신 지역이나 학교, 여성이라는 성별에 따른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사회 각 분야에 있어 인맥, 지역, 출신지역 등에 따른 차별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법원은 그런 차별이 가장 적은 곳입니다.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인지 차별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것보다는 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 배려가 부족했던 점은 있었죠. 하지만 그런 부분조차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해요.”
임명 당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위해 힘쓰시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소수자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법조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일거에요. 현재 저를 제외한 대법관들은 모두 서울대 출신의 남성 법관들입니다. 국민들에게는 엘리트코스를 밟은 이러한 법관들이 사회적 약자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겠죠. 결국 실제로는 이러한 대법관들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국민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면, 저는 여성 대법관으로써 이러한 노력들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여성이나 소수자의 문제에 대해 사법부는 적극적으로 이들의 입장에 서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사법기관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요. 이를 위해 사법기관이 개선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사법부의 신뢰도 문제는 저희 내부에서도 큰 화두에요. 이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 ‘세계은행’에서 실시한 전 세계 사법부 신뢰도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은 세계적이에요. 다만, 사법부의 많은 부분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사법부를 신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죠. 최근 언론에서는 대법원의 이런 감추어진 부분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법관들의 생활이나 전원합의체 판결(재판장인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는 판결)이 이루어지는 방식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죠. 이런 것들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로 삼는 것은 미국대법원이에요. 미국대법원은 1년에 100여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3000여건의 사건을 다루죠. 미국처럼 사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헌법적 가치를 실현시키려 노력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대법원이 다루는 사건이 적어야 합니다. 사건의 경중을 가릴 수는 없지만 대법원까지 오는 사건 중에는 벌금 10만원, 5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사건들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특별한 법률적인 문제가 없는 사건의 경우, 하급심(하급 법원에서 하는 소송의 심리)에서 당사자들이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대법원에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87년에 법관으로 임용되신 이후, 판사 및 변호사로서 재직하시는 동안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사사건 전문가’로 인정받으셨습니다. 이제까지 맡으셨던 사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변호사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어요. 결혼생활 중 남편에게 계속 매 맞던 아내가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었죠. 부인이 구치소에 있을 때부터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방문하며 계속 위로하고 많은 안정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후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도 저에게 계속 카드나 편지를 보내주곤 해요. 변호사이기 이전에 같은 여성으로서, 기억에 남는 사건입니다.”
국가 최고 재판관의 입장에서, 훌륭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법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신문이나 bet365 토토사이트를 꼭 놓치지 말아야 해요. 또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만약 학업 때문에 책 읽기가 쉽지 않다면 저는 연속극이라도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연속극을 통해 시대의 조류가 어떤지,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죠. 요즘 국민들은 판결만 열심히 하고 책만 열심히 읽는 법관에게 판결받기 싫다고 말합니다. 좋은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인간과 사회의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위에서 제게 왜 법관이 됐냐고 묻곤 해요. 하지만 전 어렸을 적부터 당연히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왜 법관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법관이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어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봄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가을에는 추수를 해야 하죠. 마찬가지로 학생 때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요소에 방해받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은 학생시절뿐 이에요. 후배들이 학생 때만큼은 치열하게 살았으면 해요. 공부뿐 만 아니라 독서, 봉사활동 등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한양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학력 및 약력
박보영 동문(법학.80)

1980년 우리대학 서울캠퍼스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지난 1월, 박 동문은 우리대학 최초, 사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 중이다. 박 동문은 사시26회, 연수원 16기 출신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사사건 전문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지법과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으며 수원지법, 서울지법, 순천지원, 성남지원 등 18년 동안 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2004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에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맡으며 다문화가정과 성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사업을 주도하는 등 리더십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