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쌕쌕이'라 불린 사나이, 사자군단의 새 수장이 되다

한양대 축구부 신임 감독 ‘쌕쌕이’ 정재권 인터뷰

 

   
 

‘쌕쌕이’가 뭔지 궁금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제트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한양대생들의 할머니뻘 되시는 분들께서 자주 사용하던 말이니 생소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이런 생뚱맞은 얘기를 왜 꺼내는지도 아리송할 것이다. 바로 이번 코너에서 만나게 될 인물의 별명이 ‘쌕쌕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양대 축구부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재권 신임 감독이다. 정 감독은 19살 때부터 국가대표에 데뷔, 한양대 축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뽑힌 바 있는 ‘레전드’ 출신이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조명하고 한양대 축구부를 어떻게 이끌 계획인지 ‘Special Interview'에서 직접 확인해보자.



▪발이 빨라 축구를 시작한 소년...눈물 젖은 첫 태극마크의 추억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화를 신었지만 타고난 스피드로 이내 두각을 나타내면서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부산 사하초 시절 중앙 수비수를 맡았으나 장평중에 진학하면서 본인에게 알맞은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 무서운 속도로 기량이 급성장했다. 부산상고(현 개성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8년 U-19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마침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에게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 U-19 대표팀엔 노정윤, 서정원, 신태용, 김도훈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였는데 나한테 볼이 세 번 정도 왔다. 그중에 두 번은 슈팅을 때렸는데 골대를 한참 벗어났고, 한 번은 볼을 그대로 터치아웃 시켜버렸다. 그러자 김삼락 당시 U-19 대표팀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넌 스피드가 빠르니까 그냥 선심을 봐’라고 말씀하시더라. (웃음) 한마디로 말해서 감독님 눈 밖에 난 거다. 결국 카타르 AFC U-19 대회 최종 명단에 뽑힌 선수 중에 나만 경기를 뛰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고 다른 선수들이 마사지를 받을 때 우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수영장에 들어가 남몰래 눈물을 쏟았다. 다시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한양대 축구의 전성기 이끌어...대표팀에서도 명예회복에 성공하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진로를 놓고 고민한 후 한양대에 진학했다.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이 기억하는 한양대 시절 얘기를 들어보았다.


“개인적으로 한양대가 연고대보다 좋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한양대 체육부가 처음 출범할 때 연고대를 뛰어넘는 체육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다. 하종화, 김세진 등 당시 배구부의 실력도 엄청났지만, 축구부 역시 한양대 선수로 뛰면서 대학 선발에 못 뽑히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전력이 좋았다. 내가 한양대에 다닐 때 연고대와의 경기에서 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다.”


대학 시절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이 속한 한양대는 각종 대회를 휩쓸고 선수 개인도 많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국 대표로 출전한 킹스컵에서는 3년 연속 MVP를 받으며 팀을 3연패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그만큼 한양대 축구는 최전성기를 구가했고 그 중심에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양대 재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3학년인 때였다. 대학 선수권대회에 결승전에서 고려대랑 만났다. 유니버시아드 대표 5명이 속한 한양대와 올림픽 대표 6명이 포함된 고려대가 붙었다고 하니까 언론이 떠들썩했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면서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지만 서정원 선수가 속한 고려대가 조금은 우세하지 않겠냐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고대 못지않게 좋은 스쿼드를 구축한 팀이었고, 선수들 모두 절대로 지기 싫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가 벌어졌는데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나랑 한정국 선수가 골을 넣어서 고려대를 2-1로 이겼다. 우승하고 나서 학교로 돌아오는 내내 기쁜 걸 넘어서 황홀할 지경이었다. 아직도 잊지 않는다.”


성공적인 대학선수생활을 보낸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한양대 3학년 재학 중인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혔다. 이 대회에서 그는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 반 데 사르가 버틴 네덜란드마저 승부차기 끝에 격파하고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이후 대학 선수권 대회도 끝나고 올림픽 대표팀을 선발하는 시기였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님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 경험했던 김삼락 감독님이 지휘봉을 잡고 계셨다. 당시 우리 학교 배기문 감독님께서 나를 추천하셨지만 김 감독님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셨다. 배 감독님께서 자존심이 상하셨겠지만 자세를 낮추시고 사정을 해주신 덕분에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대표팀에 승선하자마자 김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감독실 문을 노크하고 문을 열었는데 등을 돌리고 눈도 안 마주친 채로 ‘왔냐’ 는 한마디만 하셨다. 그렇게 어렵사리 올림픽 대표팀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K리그 팀들과 차례로 연습경기를 가졌는데 운이 따라서 그날 골도 넣고 어시스트도 기록했더니 다음 날 언론에서 ‘흙 속의 진주’가 발견됐다고 기사가 나오더라. 게임이 끝나고 김삼락 감독님께서 다시 나를 부르셨다. 이번에는 내 눈을 보시면서 ‘많이 좋아졌네.’라는 말씀을 하시고 다시 방 배정을 해주셨다. 그렇게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되었는데 18명의 엔트리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프로가 아닌 대학생 신분이었다. 그때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했더라면 지금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올림픽에서의 맹활약, K리그를 평정한 사나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은 지금도 역대 최강 멤버로 불린다. 노정윤, 서정원, 이임생, 강철, 신태용이 속한 초호화 멤버였다. 지금은 한국 최고의 수문장 이운재가 이때만 하더라도 신범철에게 밀려 후보였을 정도다. 당시 대표팀은 올림픽 본선 직전 과르디올라, 루이스 엔리케가 이끄는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2-3으로 분패할 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다. 이처럼 스타들이 즐비한 선수들 속에서도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보란 듯이 진가를 발휘했다. 첫 경기 모로코전에서 멋진 발리슛으로 동점 골을 넣으며 한국의 대회 첫 골을 신고한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은 모로코, 파라과이, 스웨덴과의 경기를 모두 비기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올림픽 직후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다이너스티컵 중국전에서 A매치 데뷔와 동시에 골까지 터뜨리는 등, 성인 무대에도 무난하게 연착륙했다. 이듬해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드래프트를 거부한 채 실업팀인 기업은행으로 갔다.


“지금도 드래프트는 문제가 많지만, 내가 가고 싶은 구단을 못 간다는 게 가장 싫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면서 국가대표 다수가 속한 대우에 꼭 가고 싶었다. 고향도 부산이니까 연고지 팀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고.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도 제의가 왔었지만 당시 한일관계가 냉랭한 상황이라 일본 진출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은행 팀에서 괜찮은 조건으로 제의가 들어와서 실업팀에서 뛰게 된 것이다. 계약서엔 내가 원할 땐 풀어주는 조건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1년 후 바로 대우로 쉽게 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열망해오던 대우 구단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게 정재권 감독은 1994년 K리그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첫해 14경기에 출장해 1골 2도움을 기록, 성공적으로 리그에 적응한 그는 데뷔한 지 불과 3년 만에 1997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부산 대우 로얄즈의 3관왕에 크게 이바지하며 팀의 전성기를 함께 했고, 전국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다. 98시즌에도 8골 8도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등 정재권 감독은 거침없이 성공 가도를 달렸다.


“당시 이동국, 안정환, 고종수가 동시대에 뛰면서 K리그가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시기였다. 구덕 운동장에서 열린 홈경기에 관중이 3만 명 이상이 몰려서 서서 보는 사람도 있었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우리 팀의 선수 구성만 봐도 용병 3인방 샤샤, 마니치, 뚜레가 있었다. 우성용, 안정환, 김주성 여기에 나까지 (웃음) 그야말로 호화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선수 이름값이 좋다고 성적을 내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가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내면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 한 마디로 거칠 것이 없었던 때였다.”


▪월드컵과 유럽 진출의 기로에 서다...3개월 만에 귀국한 사연은?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준비하던 차범근 forever 토토사이트의 눈에도 들게 되었다. 프랑스월드컵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올 무렵, 차범근 forever 토토사이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팀에 소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였지만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포르투갈 1부리그 비토리아 세투발 FC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때까지 대표팀 생활은 6년 정도 해왔지만, 해외 생활은 한 번도 못 해봤다. 나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유럽 진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내가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정중하게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차 감독님께서는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얼마든지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다고 설득하셨지만, 앞일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축구 선수로서는 전성기에 해당하는 29살의 나이에 유럽 진출을 마다하기 힘들었고, 포르투갈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 포르투갈로 갔을 때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연습할 때는 선수들의 텃세 때문에 볼을 만지기조차 어려웠다. 안 되겠다 싶어서 동료의 볼을 뺏어서 직접 패스를 했고, 이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적응을 마친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데뷔전에서 곧바로 forever 토토사이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정 경기를 앞두고 출전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투입돼 골까지 넣은 것. 머나먼 동양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첫 경기부터 골을 넣자 포르투갈의 작은 항구 도시 세투발은 난리가 났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더는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불과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포르투갈에서 내 에이전트를 대행해 주시던 분이 연습 때 내가 찬 볼을 받고 있었다. 원래 치질이 좀 있으셨던 분인데 하필이면 그때 치질이 터지신 거다.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생각보다 증상이 심해서 그분만 수술을 받으러 한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에이전트 없이 구단과의 각종 계약이나 협의는 물론 현지에서 집을 얻는 일까지 모조리 내가 해결해야만 했다.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구단에서 주급을 조금씩 늦게 주더라. 거기서 감정이 확 상해서 에이전트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했는데 여전히 못 돌아오는 상황이라고 연락이 왔다. 구단에서는 나 혼자 계약을 체결하자고 하면서 급여는 또 안 주고. 답답한 마음에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대우 구단과 연락했다. 구단에서도 못 견디겠으면 들어오라고 하더라. 그 한 마디에 그날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당연히 포르투갈에서는 난리가 났다. 지금에 와서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 구단에선 피파에 제소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다행히 잘 해결돼서 무사하게 귀국할 수 있었고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잘 있어라 그라운드여’ 명예롭지 못했던 은퇴


K리그로 복귀한 후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몸 상태는 괜찮았지만 이상하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슬럼프를 끊기 위해 산속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분명히 들어갔다 싶은 슛도 골키퍼가 쳐낸다든지, 같은 팀 선수 몸에 맞는다든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좀처럼 골을 기록할 수 없었다. 구단에서도 유럽에서 돌아오는 조건으로 최고 연봉을 지급했지만 받는 연봉의 10% 정도의 활약만 펼쳤을 정도로 활약은 저조했다. 극심한 부진 속에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고향 부산을 떠나 포항으로 이적했다. 정든 팀을 떠나는 건 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우가 사라졌기 때문에 부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조광래 감독님이 계신 안양 LG로 가려고 했다. 근데 포항 박성화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같은 부산 출신이시기도 하고 또 유독 포항이랑 경기할 때 공격 포인트가 많았던 것 때문에 나를 부르신 것 같다. 힘드니까 도와달라는 감독님의 말씀에 바로 포항으로 갔다. 그런데 박 감독님이 6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일이 꼬였다. 최순호 감독님이 새로 부임하셨지만 나와는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내 자존심도 있었는지라 포항에서 나와 혼자 몸을 만들게 되었다.”


2001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정재권 감독은 1년 넘게 홀로 몸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했을 때도 그만은 예외였다. 선수로서 충분히 뛸 수 있는 32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온몸을 휘감는 무력감과 회의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프로 무대에서 물러났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다...K3리그 선수 생활도 병행?

선수생활이 끝났지만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축구인생 2막을 맞이했다. 2002년 동의대학교 코치직을 맡으며 지도자의 길에 접어들었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동래중학교에서 forever 토토사이트을 역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선수 생활을 했던 모교로 돌아와 한양대 코치로 부임했다. forever 토토사이트직을 내려놓고 코치직을 맡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에 대한 그만의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물론 쉬웠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일하다 밑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양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내 모교였기 때문이다. 신현호 감독님께서 같이 일해보자고 하셨을 때 감독님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나는 망설임 없이 코치직을 맡았다.”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코치로 부임한 이후 신현호 전(前) forever 토토사이트과 함께 6년 동안 호흡을 맞추며 팀을 이끌었다.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신현호 forever 토토사이트 밑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어릴수록 화를 잘 못 참는다. 나도 선수 시절 그런 점을 좀 더 잘 다스렸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데 신현호 감독님을 6년 동안 모시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나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마인드가 생겼다. 또한 감독님께서 팀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나에게 많이 전해주셔서 그 부분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2008년 한양대 코치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K3 리그에서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로 활약한 것.


“대신고와의 연습경기였는데 우리 팀 선수가 한 명 부족해서 내가 직접 게임을 뛰게 됐다. 당시 서울 유나이티드 임근재 감독이 보기에 내가 충분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나 보다. 게임 끝나고 와서 나한테 하는 말이 ‘몸도 괜찮은데 우리 팀에 와서 뛰어주면 안 되느냐’라고 묻더라. 팀 홍보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대학 선수들과 같이 경기해도 몸에 전혀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라운드를 다시 밟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한 팀에서는 코치로, 다른 한 팀에서는 선수로 뛰는 건 흔치 않은 일. 이러한 경험이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 한쪽의 입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다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직접 경기를 뛰고 온 다음에 우리 학교 선수를 지도하니까 선수들의 마음을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좀 더 세부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또 내가 뛰는 경기에 애들(한양대 선수)이 와서 응원까지 하니까 정말 열심히 뛰었다. 내가 못하면 애들이 나보고 ‘코치님도 안되는 걸 저희한테 시키십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니까. (웃음) 그런 식으로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이 그려나갈 청사진

정재권 신임 forever 토토사이트에게 어떠한 철학으로 팀을 이끌 계획인지 질문을 던졌다.


“선수들에게 3가지를 주문했다. ‘컴팩트하게’, ‘심플하게’, ‘다이나믹하게’ 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떠한 것들을 해야 하는지 서로 얘기를 나눴다. 또 기본적으로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인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인성을 기르는 데에도 주안점을 둘 것이다. 전 감독님이 추구하신 플레이와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수 구성에선 차이를 줄 것이고, 더욱 세밀한 축구를 추구하려고 한다. 특히 득점 지역에서의 볼 소유 비율이 높은 선수를 원한다. 한두 명에 의존해서 득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득점 루트를 갖추고 있어야 상대방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격수는 상대방 진영에서 볼을 뺏기지 않는 선수, 그리고 동료와 볼을 잘 주고받을 수 있는 선수여야 한다. 문전에서도 자유롭게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자신감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볼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선수여야 한다. 그런 선수가 많을수록 상대는 부담되기 마련이다.”


어느 forever 토토사이트이든지 만족스러울 때와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정재권 forever 토토사이트은 어떤 부분을 만족스러워하고 어떤 점을 불만족스러워할까?


“제일 좋은 건 감독이 요구하는 걸 운동장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만큼 감독으로서 뿌듯할 때가 없다. 반면 우리 경기를 못 하고 상대방의 플레이에 이끌려 다닐 때 지도자로서 가장 화가 난다. 선수들에게 화나기보다는 나 스스로 ‘전술과 지시가 문제가 있나?’ 이렇게 자책하게 된다.”


정 forever 토토사이트은 지난 시즌에 대한 아쉬움도 빼놓지 않았다.


“작년 춘계대회 결승에서 광주대에 지지 않았나. 핸드볼 판정 논란(한양대가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광주대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을 저질렀지만 휘슬이 불리지 않았던 사건)을 떠나서 경기 준비를 현명하게 못 했던 것 같다. 지도자의 시야가 좁아지니까 판단이 흐려지게 되더라.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서두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팀을 만나도 방심하지 않고 충분히 대비할 것이다.”


한양대에 부임한 첫 시즌인 만큼 성적에 대한 기대감도 크기 마련이다. 정재권 신임 forever 토토사이트의 출사표를 들어보았다.


“신문을 보니까 대학 축구가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더라. 어느 하나 절대 강자가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단 소리다. 동감을 한다. 각 팀 선수들의 수준이 갈수록 평준화되고 있다. 결국 누가 준비를 잘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우린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하고, 최소한 4강에 속하는 전력을 유지할 것이다. 우승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계 훈련 기간에 연습 경기를 23번 치르는 동안 경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큰 부상자도 없는 상황이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매년 U리그에서 챔피언십 본선 무대에서 번번이 탈락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징크스를 꼭 깨고 싶다.”

 

◆한양대 학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먼저 한양대학교 축구부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U리그 홈경기가 우리 학교에서 열린다면 많은 동문과 학우들이 응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한양대 축구부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꼭 한양대 축구부가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힘낼 테니까 학우 분들의 많은 응원을 부탁합니다.

From. 정재권



 글·사진_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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