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유진 경상대학장
유사 이래 모든 인간은 불안했다. 우리의 조상은 자연환 경, 질병, 전쟁 등으로 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생존해 왔다. 진화의 과정에서 그들은 힘과 속도와 같은 물리적인 능력을 발전시킨 타 동물과는 다르게 두터운 전두엽으로 대표되는 지적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로 우리의 조상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걱정과 불안은 늘 희망 안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자연환경과 각종 재난은 극복되고 있지만 21세기에도 현대인은 여전히 불안하다. 풍요와 자유 속에서 자라났지만 동시에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기후위기가 일상의 언어가 되었으며,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에 Z세대는 ‘희망’을 말하기에 오히려 가장 어려운 세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선조들 과 마찬가지로 ‘희망의 단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삼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감지되는 Z세대의 ‘포지티브 모멘텀’ 소비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불안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그들만의 실천적 태도라 할 수 있다.
‘포지티브 모멘텀’은 어떤 프로세스나 움직임이 속도와 강도를 얻어 지속가능성이 커지고 중단 가능성이 줄어드는 상황을 말하는데 사업에서 이는 종종 매출, 이익의 증가와 더불어 부채 감소 및 예상 현금 흐름 증가로 이어지는 좋은 흐름을 뜻하는 개념이다. 최근 언급되는 Z세대의 ‘포지티브 모멘텀’은 가혹한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통해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력을 의미한다. 이는 어떤 성취나 외적 성공보다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긍정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작지만 반복적인 선택들로 구성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Z세대는 거대한 미래를 향한 도약보다 일상 속 안정과 기쁨을 추구한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마시는 라테 한 잔, 나만의 루틴으로 꾸며진 하루, 자신을 위한 취향의 소비. 이는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효능감과 감정 회복을 통해 버거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Z세대의 이러한 소비 패턴은 그들이 직면한 사회적·심리 적 현실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이전 세대들은 민주화, 통일, 경제성장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당면했지만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함께 효과적으로 대처해왔다. 그 결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발전과 사회문화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양극화, 과도한 경쟁으로 비롯된 공동체 붕괴로 인한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의 와해와 같은 어두운 부분을 함께 가져왔다. 전체의 부는 증가했지만 만인의 투쟁 시대는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들어왔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이불 밖은 위험해”가 농담만은 아니게 느껴진다. 디지털 기술과 SNS의 발달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세계의 고통과 혼란을 24시간, 7일, 365일 실시간으로 노출시키며 우리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한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을 묻는 질문에 48.1%가 ‘좋지 않음’이라 답했다. ‘보통’은 40.5%, ‘좋음’은 11.4%에 불과했다. 또한 응답자의 26.3%가 ‘중간 정도 이상의 불안’에 해당했으며, 33.1%는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43.3%는 ‘외롭다고 느낀다’, 33.7%는 ‘소외돼 있다고 느낀다’고 답변했다.
불안과 우울감은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해서 개인의 정신 건강에 피해를 가져올 뿐 아니라 좁아진 시야와 창의력 부진으로 인한 생산력 감소 등 사회 건강 차원에서도 큰 해악을 가져온다. 이런 불안과 우울감은 적응에 실패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정부와 사회단체에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반 개개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존을 위해 각자 대응하고 있지만 외계인의 공격은 무찌를 수 있는 슈퍼맨도, 어벤저스도 양극화, 환경오염, 가자지구 분쟁은 해결할 수 없는데 일개 개인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요 원해 보인다. 그럼 이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오는 불안을 어떻게 대처할까? 이들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것들’에 집중하며, 불안을 조절하고자 한다. 갓생, 오운완, 독립서점 방문 인증샷, 식물집사 되기, 완소 덕질 등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상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Z세대는 그것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이런 흐름은 철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에는 온갖 재앙이 담겨 있었지만, 마지막에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 희망은 고통이 사라진 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 한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Z세대는 기 후위기, 전쟁, 경제 불안, AI로 인한 정체성 위기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소비와 일상 속에서 만들어내고자 한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 라틴어 문장은 고대 로마인들이 자신을 겸허히 하거나 삶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길 때 사용하던 문장이다. 하지만 Z세대는 이 문장을 “죽음을 기억하되, 오늘을 더 충만히 살라”는 뜻으로 확장시킨다. 죽음과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그 안에서 지금의 나를 긍정하려는 태도. 그것이 바로 포지티브 모멘텀이다.
AI시대에 인간의 능력이 위협받는 지금, 오히려 감정, 정서, 취향, 삶의 태도 같은 비물질적 영역이 더 소중해지고 있다. Z인어공주 토토사이트는 경험과 감정 중심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 체성을 형성하고, 그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디지털 피로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 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는, 결국 절망을 밀어내는 희망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Z세대의 이러한 소비를 단순히 개인적 취향이나 일시적 유행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한 세대가 불 안을 감내하고 살아내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포지티브 모멘텀’은 작고 조용하지만, 이 사회가 지속 가능해지기 위한 감정적 기반이자, 새로운 시대 윤리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