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대 매거진 2020년 겨울호] 정민 교수(국어국문학과)의 'bet365 토토사이트의 힘' 시리즈 마지막
bet365 토토사이트의 힘, 접속의 경로
독서는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영양제이다. 우리는 ‘독서의 힘으로 현실을 꿰뚫다!’를 2020년 테마로 삼고 지난 1년 동안 책이란 무엇인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고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독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서 독서의 힘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텍스트 읽기의 힘
필자가 매년 2학기에 진행하는 문학텍스트 읽기 수업은 매주 학생들에게 다양한 텍스트를 제시해 학생들이 그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채워 읽기, 풀어 읽기, 엮어 읽기, 견줘 읽기, 맥락 읽기, 그림 읽기, 문화 읽기, 코드 읽기, 광고 읽기 등등으로 구분해 『삼국사기』 열전도 읽고, 시 두 편을 견줘 읽기도 하며, 이상의 수필 작품을 분석하기도 한다. 신윤복의 풍속화나 김홍도의 「서당」 그림도 분석의 대상에 오른다.
광고나 사진을 분석하는 과제가 부과될 때도 있다. 학생들은 처음 두세 주는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다른 학생들의 분석과 발표를 듣고 자신의 과제를 돌아보다 보면,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다들 글에 한결 힘이 붙는다. 매주 30명 가까운 인원의 과제를 하나의 파일로 묶어 수업 전에 강의실에 올린다. 잘된 글이 앞쪽에 놓이고, 발표 순서에 따라 내용을 안배하여 정렬한다. 워낙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서, 하나의 텍스트가 이렇게 다양한 빛깔을 지니고 있었나 싶어, 읽다가 내가 놀랄 때가 많다.
올해는 특히 비대면 강의로 진행하다 보니, 과제 묶음을 공유 화면에 띄워놓고 발표자를 지정하면, 그 학생이 화면상에서 자신의 과제를 발표한다. 소리를 내서 읽으니, 글쓰기의 잘못된 습관도 자연스레 드러나고, 글의 방향이 잘못된 것도 저절로 알게 된다. 발표가 다 끝나면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해당 텍스트에 대한 중심적 시선이 모두에게 정돈되어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문제들은 하나로 합쳐질 수 없이 나란히 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개의 해답이 더 소중할 때도 있다.
어떤 학생은 접속사를 습관적으로 쓰는 문제가 드러나 지적을 받는다. 다른 학생은 ‘것이다’체를 남발하는 버릇이 있다. 나중에는 ‘것이었던 것이다’라고 해야 마음이 놓인다. 습관적으로 ‘같아요’체를 되풀이하다가 ‘같은 것 같아요’까지 가기도 한다. 단락 개념이 없어 문제가 되는 수도 있다. 지적해 주면 그 버릇을 뚜렷이 자각한다. 화면으로 직접 몇 단락쯤 수정 시범을 보여주면, 다음 주 과제에선 그 버릇이 간데없이 고쳐진다.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습관들이어서 대부분 깜짝 놀란다.
읽기는 쓰기를 위한 연습
세상의 모든 일은 읽기로 시작해서 쓰기로 끝난다. 수업에서는 매주 바뀌는 텍스트를 읽지만, 졸업 후 취업하면 상사가 지시하는 과제를 읽어내야만 한다. 왜 이 작업을 해야하나? 어디에 포인트를 두어야 하나? 과정은 합리적인가? 결과는 설득력이 있나?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주식 투자를 하더라도 텍스트의 결을 읽는 안목은 절대적이다. 이 사건 또는 이 상황이 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까?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맥락을 알고 보면 보이는데, 그저 보면 남 따라 하기만도 바쁘다. 하지만 예측을 제대로 하고 못 하고에 따라 받아드는 성적표가 하늘과 땅 차이다.
처음에 방향을 엉뚱하게 잡으면 길을 잃고 딴 데 가서 헤매기 쉽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거둘 것이 없다. 너무 상식적인 접근만 하면 하나 마나 한 얘기만 하다가 성과 없이 끝난다. 의욕이 너무 과도해도 문제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뒷감당이 안 되다 보니 소화 불량에 걸린다. 무슨 일이든 언제나 맥락과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을 때는 예상을 하며 읽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머릿속에 먼저 방향이 서야 한다. 목차를 보고, 서문을 읽어, 전체 골격을 예상한다. 방향이 잡히면 bet365 토토사이트에 속도가 붙는다. 방향을 놓치면 읽히지도 않고, 읽어도 보람이 없다. 좋은 글은 이해의 경로가 분명해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나쁜 글은 현란한 문체로 야단스럽게 너스레를 떨지만, 저도 잘 모르는 소리여서 읽어도 모를 소리만 한다. 논문도 그렇고, 보고서도 그렇고, 문학 작품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글을 잘 읽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글을 잘 쓰려면 잘 읽는 것이 먼저다. bet365 토토사이트는 말귀를 잘 알아듣기 위한 연습이고, 글쓰기는 제 생각을 잘 펼치는 훈련이다. 이 둘은 긴밀하게서로 맞물려 있다. 우리가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쓰는 것을 습관화해야 하는 이유다. 밥 먹고 숨 쉬고 운동하듯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다. 의미는 사물 속에 깊숙이 숨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고, 귀를 기울여야 들린다. 그저 보고 대충 보면 안 보이고 안 들린다.
텍스트 읽기 수업에서도 가끔 회심의 미소가 느껴지는 글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글에는 자부심에다 거드름까지 얼핏 묻어난다. ‘제가 이런 것까지 읽어냈습니다’ 하는 자랑이 한가득이다. 다른 학생들의 글을 함께 읽다가 그 자랑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수도 있지만, 방향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그 기개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과제를 제출하면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쓰면, 나는 웃으면서 “열심히 했지만 부족하다.”고 답글을 달아준다. “핀트가 조금 안 맞았지만 잘했다.”고 대답해줄 때도 있다.
잘 읽고 열심히 읽어야 제대로 쓸 수가 있다. 엉뚱하게 읽고, 대충 읽어서는 그저 그런 글밖에 못 쓴다. 삶에 긴장이 빠지면 맥없고 실없게 되고, 글이 생각의 결을 놓치고 짜임새를 잃으면, 쓰나 마나 한 글이 된다. 이것이 쌓여 그저 그런 맥빠진 인생이 된다.
접촉에서 접속으로
타오마자인(thaumazein)!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말한, 놀라워하는 ‘경이’의 감정이야 말로 모든 탐구의 출발점이다. 독서는 세계 또는 타자와의 접촉을 접속으로 이어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그 접속을 내재화해서 내 안에 무늬로 새겨준다. 우리는 날마다 세계와 만나고 타자와 접촉한다. 접촉만으로는 부족하다. 접촉은 접속으로 이어져야 변화가 된다. 일상이 경이로 가득 차려면 접촉을 넘어 더 많은 접속이 필요하다. 그것은 광합성과 같아서, 만나는 순간 다른 차원이 된다. 나른하던 일상에 생기가 돌고, 매일 지겹게 반복하던 작업에 활기가 넘친다. 남이 보면서도 못 보는 것이, 내게는 안 보고도 훤히 보인다.
접속 없이 여기저기 기웃대고 집적대기만 하면 삶이 산만하고 잡스러워진다. bet365 토토사이트는 더 많은 접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다. 남이 오래 애써서 깨달은 소식에 단숨에 진입하게 해준다. 무림의 절대 고수를 만나 단번에 상승 무공을 깨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것도 몸 상태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드는 지름길일 뿐이다.
bet365 토토사이트는 수많은 연습과 훈련을 거쳐야 겨우 체득할까 말까 한 동작과도 같다. 막상 도달한 뒤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데, 도달하기 전까지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그 순간은 느닷없이 생각지 않게 온다. 그리고 한번 오면 절대 나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bet365 토토사이트는 목적 없이 그 자체로 합목적적인 그 무엇이다.
읽기가 없는 인생은 쓰기도 없다. 읽기의 기쁨 없이 쓰기의 성과를 얻으려는 것은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는 욕심쟁이의 심보다. 인풋 없이는 아웃풋도 없다.

정민 교수는?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 정약용 연구의 권위자이자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 속의 지혜를 전하는 지식인이다. 혜안을 넓히는 bet365 토토사이트와 글쓰기에 관한 강연과 저서 활동도 펼치고 있다.
글 정민 교수(국어국문학과)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겨울호(통권 제256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