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듬성듬성 서 있던 건물에서 한양의 열정이 타올랐으니"

 우리는 모두 갓난아기 시절을 겪었고, 성장하여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우리들이 앞으로 더 성장해 나감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두 글자로 “역사”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의 교훈을 준다. 잘못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과,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더 성장하고픈 의욕을 갖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양대는 어떠했는가? 애당초 백남학술정보관이 자리하고 애지문이 있진 않았을터, 우리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수업했던 그 때 그 행당산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자. 이 기사를 통해 우리의 지난날을 알고, 더 크고 강한 한양대를 만들어갈 의욕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 살곶이 다리에서 바라본 68년 경 토토사이트의 모습(사진촬영: Nomura Moyoyuki 野村基之, 출처: 추억의 편린들 'http://blog.naver.com/s5we')

 

 좌측의 흰색건물이 현재 음악대학이 쓰고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있는 낮은 건물이 1개 층 증축 이전의 제1공학관이다. 그 사이로 보이는 날개모양의 건물은 현재도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인문대 건물이다.(인화과정에서 좌우가 뒤바뀐 것으로 추정됨. 따라서 음악관과 제1공학관이 자리를 바꾸어 보는 것이 맞음)

 

   
▲ 1974년 토토사이트학교의 전경. 위의 사진보다 더 많은 건물이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출처: 추억의 편린들 http://blog.naver.com/s5we)

 

 이 시기의 캠퍼스는 중앙의 노천극장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현재의 모양새가 갖추어진 캠퍼스라 할 수 있다. 맨 아래 건물은 현재는 신소재 공학관으로 바뀌었으며 그 우측으로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공학센터 건물이다. 그 맞은편에는 토건관(대학원 건물)이 있으며 한양 플라자, 본관(현 역사관)도 보인다. 저 뒤 2시방향은 지금 행원파크, HIT 자리인데 당시에는 야구장으로 쓰였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현재의 백남학술 정보관 자리에 "대강당"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 중앙도서관은 어디있었을까?

 

   
▲ 60년대 후반 경의 토토사이트. 현재는 의대 강의동으로 쓰이고 있지만 90년대 중, 후반까지 우측 흰색건물이 중앙도서관으로 쓰였다.(출처: 추억의 편린들 'http://blog.naver.com/s5we')

 

 지금 의과대학 건물인 우측 흰색건물은 본디 중앙도서관이었다. 백남학술정보관이 준공되기 이전까지 한양대의 도서관 규모나 시설은 동일 급간 학교에 비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우리 선배들은 바로 저 곳에서 향학의 열정을 불태웠고, 현재의 한양대를 만드는 거름이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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